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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영화&드라마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순간, 꽃피는 봄이 오면

by 푸른가람 202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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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눈처럼 흩날리는 때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니 무심히 흐르는 세월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올드보이’, ‘범죄와의 전쟁’, ‘명량’ 등 수많은 영화에서 선 굵은 연기로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최민식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입니다. 

최민식 배우가 이런 멜로/로맨스 장르에 출연했다는 것도 무척 이채롭게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여러 대작 영화들을 통해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도 초기에는 ‘파이란’과 같은 로맨스 영화에서 삼류 건달 역할을 맡으며 깊은 내면 연기를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해 낼 줄 아는 멋진 배우라고 생각됩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최민식은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지만 현실에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트럼펫 연주자 현우를 연기했습니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연주하는 것을 혐오합니다. 그래서 캬바레에서 연주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 경수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해댑니다. 오랜 연인인 연희와 헤어지게 된 것도 이런 그의 성향이 갈등을 빚었기 때문입니다.

좋게 보면 참 순수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 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답답한 고집쟁이의 모습입니다. 꿈은 저 멀리 떨어진 별빛처럼 아스라히 멀기만 하고, 냉혹한 현실에 아파하고,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지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출구를 짐작할 수 있는 희미한 빛조차 보이지 않는 삶 앞에서 그는 방황합니다.

오래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녀를 붙잡고 싶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 때문에,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도 못합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는 삼척 도계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뒤로 하고 해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관악부의 모습은 현우의 현재와 무척 닮아 있습니다.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해산해야 하는 도계중학교 관악부. 실력은 부족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질 것 없는 관악부 아이들과 함께 그는 차가운 겨울을 헤쳐 나갑니다. 예쁜 마을 약사 선생님 수연(장신영), 늘 투닥거리면서도 격려해주는 경수(장현성), 세상 전부였던 할머니를 잃고 실의에 빠진 재일(이재응), 서로를 잊지 못하는 첫사랑 연희(김호정). 모두가 그의 곁에서 모진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더디지만 언젠가 찾아올 봄을 함께 기다리면서. 그 속에서 현우의 생각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현우가 혼자 소주를 들이키며 밤늦게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 나 사랑해?”하고 묻습니다. “미친 놈” 엄마는 시크하게 대답하지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울먹이는 현우에게 “넌 지금이 처음이야. 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하며 다독여주는 엄마의 따뜻한 위로의 말, 그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 늘 울컥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케니지 같은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딴따라’가 되길 원치 않는 아버지는 반대하죠. 현우가 찾아가 아버지를 설득해 보지만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도계중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탄광을 찾아가 비를 맞으며 작업을 마치고 탄광을 나오는 아버지들을 위해 연주를 합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이 곡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이 곡을 듣게 되면 이 장면이 자연스레 오버랩됩니다.

도계에서 태어나 작은 약국을 마을에서 운영하며 살고 있는 약사 수연과의 에피소드도 따뜻합니다. 썸이라고 해야 할 지, 서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관심과 따뜻한 위로였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수연은 어차피 현우가 잠시 머물렀다 갈 사람임을 알았기에 적당한 선에서 멈추었다고 여겨봅니다. 투박하지만 변함없이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주호(김강우)의 존재도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OST로 나오는 트럼펫 연주곡, ‘옛 사랑을 위한 트럼펫’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뭐랄까요 애잔하면서도 먹먹한 슬픔이 베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뭔가 따뜻함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상처받고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라고 해야 할까요. 보다 나은 사람, 나다움을 잃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곁불이 되어줄 수 있는, 봄날 저녁의 따뜻한 훈기 같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도계중학교에서의 시간을 마친 현우는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연희의 아파트에 옵니다. 엄연한 현실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연희 역시 현우를 잊지 못해 결혼을 포기합니다. 벚꽃 아래 벤치에서 용기를 내 그녀에게 전화를 하는 현우의 표정이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해 보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활짝 핀 벚꽃처럼 밝고 화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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