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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삼성야구의 추억]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by 푸른가람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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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학 단장 짤리기 전까지는 삼성 야구를 끊겠다고 홀로 선언했으니 약속은 지켜야겠지요. 대신 다른 팀 야구를 보자니 관심이 가는 팀도 없고, MLB나 일본야구도 예전같질 않네요. 오타니 덕후도 해볼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심심한 비야구 시즌을 맞아 지나간 삼성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한국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시리즈 사상 최고의 명승부는 어느 경기인가요? 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 다를 순 있겠지만 삼성팬은 나로서는(아마 삼성팬이 아닐지라도 이처럼 극적인 게임은 없었을 듯)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를 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985년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7번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지만 단 한번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던 무관의 제왕. 최강의 전력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밥먹듯 하면서도 정작 한국시리즈에만 나가면 한없이 작아지던 삼성라이온즈로서는 재앙과도 같았던 2001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의 악몽이 오버랩되던 2002년 한국시리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002년 페난트레이스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2년 연속 직행한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힘겹게 치르고 올라온 LG와 만났습니다. 객관적 전력에서나, 체력적인 면에서나 삼성은 몇 걸음 앞서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한국시리즈 승리의 여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정규시즌 1위팀 삼성의 홈구장이었던 대구시민운동장에서 1승씩을 나눠가진 삼성과 LG는 잠실로 자리를 옮겨 자웅을 겨뤘습니다. 잠실 3연전에서는 삼성 4번타자 마해영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거포 마해영을 앞세운 삼성이 2승 1패를 거두며 시리즈 우승에 단 1경기만을 남겨두고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그 어느때보다 승리에의 확신이 컸던 6차전이었지만 초반은 엎치락 뒤치락 혼전 양상을 보였습니다. 양팀은 신윤호(LG)와 전병호(삼성)을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LG가 2회초 최동수의 석점짜리 홈런포로 앞서갔지만 삼성은 박한이의 투런포, 양준혁, 진갑용 등의 적시타 등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엎치락 뒷치락 하는 접전 양상을 이어갔습니다. 팽팽하던 승부의 균형이 급격하게 LG쪽으로 기운 건 경기 중반 이후부터였습니다. 

예상 밖으로 LG의 공격이 거세지자 다급해진 삼성은 6회초 팀의 마무리 투수 노장진을 서둘러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몸이 덜풀린 노장진은 삼성 덕아웃의 기대와 달리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조인성의 적시타로 다시 역전에 성공한 LG는 김재현의 결정적 한방으로 삼성에 카운트 펀치를 날렸습니다. 고관절 부상으로 제대로 뛸 수 조차 없었던 김재현이 대타로 나와 2타점 적시타를 터뜨린 뒤 절뚝거리며 1루 베이스에서 포효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LG는 8회초에서 노장진을 두들겨 2점을 추가하며 점수차를 넉점까지 벌였습니다. 불길한 기운이 대구구장을 휩싸고 돌았습니다. 올해도 또 어렵겠구나,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삼성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패배의식이 삼성 선수와 관중석을 가득 메운 대구팬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6차전을 놓친다면 분위기상 7차전 승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윽고 경기는 9회말에 접어 들었습니다. 스코어는 9:6으로 LG가 3점차로 넉넉하게 앞선 상황이었습니다. 마운드엔 LG의 마무리 '야생마' 이상훈이 등장했습니다. 승부가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한 대구구장의 일부 관중들이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야구장을 빠져 나가든 무렵, 선두타자 '걸사마' 김재걸의 2루타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어 팽팽한 풀카운트 승부 끝에 브리또의 볼넷이 이어지며 원아웃에 주자는 1,2루. 관중석에서는 일말의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3번타자 퍼스트베이스맨 이승엽' 이승엽의 등장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지며 타석에 국민타자 이승엽이 모습을 드러내자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승엽은 2002년 한국시리즈 내내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전 타석까지 이승엽은 한국시리즈에서 20타수 2안타를 기록중이었습니다. 한국시리즈 타율 1할타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이승엽은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서 도무지 헤어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천하의 이승엽이었지만 차라리 삼진을 당하는 것이 팀을 위한 것이라는 조롱섞인 말까지 흘러 나왔던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스타는 빛나는 법인가 봅니다. 이상훈의 초구 몸쪽 빠른공을 지켜보기만 했던 이승엽은 2구째 슬라이더를 통타해 대구구장 우측 담장 밖으로 날아가는 3점짜리 극적인 동점홈런을 처냈습니다. 9:9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 버리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무려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온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강렬한 기억입니다. 하이파이브를 나누던 마해영에게 끝내기 홈런을 주문했던 이승엽의 바람대로 이날 경기는 마해영의 극적인 한국시리즈 첫 끝내기 홈런이 터지며 삼성이 한국시리즈 무관의 한을 훌훌 털어내며 끝을 맺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날처럼 극적인 경기는 없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그날 그 경기는 단순한 한 경기기 아니라 21년을 눈물속에 참고 기다려온 사나이들의 열정이 묻어있었던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끝내기 홈런이 터진 뒤 서로 부등켜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치욕과 수모,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2023년의 삼성라이온즈에 이 경기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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