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가 2018년 5월 14일 이후 1865일만에 최하위로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꼴찌 추락은 사실상 시간 문제였다고 봤는데 완전체로 도약의 계기를 기대했던 6월에 오히려 낮뜨거운 경기력을 팬들에게 선사하며 팀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됐습니다. 야구단 운영에 큰 관심이 없는 삼성그룹도 그룹의 체면이 있으니 뭔가 극약처방이 내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지만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말 최악입니다. 수익 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팬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는 단장, 경기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는 데다 선수 육성에도 한계가 노출되고 있는 코칭스탭, 치열함과 열정이 사라진 선수들까지 삼위일체가 되어 전통의 명문구단이라는 명성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뚜렷한 해결책도, 분위기를 전환할 돌파구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리멸렬한 상태로 2023년 시즌을 손놓고 보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리빌딩을 위해서 한, 두 시즌은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팀 체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그 프로세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이 되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2016년 이후 8년째 제자리 걸음입니다. 2021년의 반등이 극적인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많았으나 아쉽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습니다.
팬들이 분노하고 걱정하는 대목은 최하위로 곤두박질친 팀 성적 자체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기대와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 본질입니다. 흔히들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고들 하지만 사실 올 시즌 삼성의 전력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현재의 성적이 당연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잘할 수 있고, 좀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밑바탕은 가지고 있는데 실전에서 그러한 능력들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의문스럽습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됩니다. 프로답지 않은 경기력과 자세로 연패를 거듭하고 팀 성적이 바닥을 치고 있지만 야구장을 찾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물론 성적의 좋을 때와 비교해 본다면 관중 감소세는 피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많은 팬들이 라이온즈파크를 찾아 삼성 야구를 즐기고 있습니다. 홍준학 단장의 표현처럼 삼성팬들이 참 착합니다. 그래서인지 삼성 구단이 팬들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야구,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팀 성적, 선수들의 경기력과는 상관 없이 삼성 야구 자체를 즐겨줄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것이 현재의 프런트, 코칭스탭, 선수들이 지향하는 삼성 야구의 방향이라면 명확하게 지향점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테니까요. 오랜 세월동안 삼성라이온즈의 야구를 사랑하고 응원해 왔던 팬들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불현듯 1997년 LG와의 플레이오프 때 맹활약했던 '주황색 아대의 사나이' 최익성 선수가 떠오릅니다. 당시 삼성은 1, 2차전을 5-11, 5-6으로 연달아 허무하게 내주며 광탈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절치부심한 삼성 선수들은 3, 4차전을 모두 6-4의 스코어로 잡아내며 대구시민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팬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3-4 한 점차로 뒤지고 있던 4차전 7회말에 극적인 역전 투런홈런을 터뜨리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던 최익성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한 경기를 더 보여드릴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얘기했습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투지, 팬들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팬들은 그런 모습만으로 충분합니다. 투박했을 지는 몰라도 야구에 진심이었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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