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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내연산의 고찰 - 보경사

by 푸른가람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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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북지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MT를 다녀온 기억이 있는 곳, 바로 포항 보경사다. 내연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이곳을 거쳐 내연산 등산 코스가 시작되기도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포항시 송라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7번 국도의 이정표를 따라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연산(710m)은 폭포가 자랑인 경북 포항의 진산(鎭山)이다. 상생·잠룡·관음·연산·시명폭 등 열두 개의 폭포가 줄줄이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폭포는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영화 <가을로>에도 내연산이 나왔었다. 

보경사는 경북 포항의 진산 내연산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내연산에는 계곡을 따라 열두 개의 폭포가 줄지어 이어진다. 신라 진평왕 25년(603)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화에선 보경사 앞 공중전화에서 김지수가 유지태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나 지금 포항에 있는 내연산에 와있거든. 근데 산되게 좋다. 폭포가 12개나 있는데 다 이쁘고, 올라가는데 힘들지도 않아서 너도 좋아할 것 같고. 다음에 같이 한번 와볼까 해서....”

둘은 나중에 함께 산을 오른다. 김지수의 설명처럼 내연산은 걷기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도 산행에 익숙치 않은 유지태는 힘들다며 투정을 부린다. 그러다 산에서 갑작스런 소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위 아래서 잠시 비를 피하던 김지수가 타이르듯 달래듯 속삭이던 말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다.

하늘위에서 들으면 비는 아무소리도 없이 내릴거야
우리가 듣는 빗소리라는 건 비가 땅에 부딪히고 돌에 부딪히고
집 지붕에 부딪히고 우산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잖아
그래서 우린 비가 와야지만 우리 주위에서 잠자고 있던
사물들의 소릴 들을 수 있는 거야 – 영화 <가을로> 중에서

보경사 대웅전은 조선후기의 목조건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새로 지었고, 1932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 보경사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3)에 중국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가 왕에게 건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이르길 “진나라의 도인에게서 받은 팔면보경을 동해안의 명산에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다”고 하여 왕과 함께 이곳을 찾아 원래 있던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법당을 세웠다. 가르침대로 한 까닭에 그 법당을 보경금당(寶鏡金堂)이라 불렀고 절 이름도 보경사(寶鏡寺)가 되었다는 것이다.

규모가 큰 사찰은 아니다. 하지만 보경사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초입부터 이목을 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울리는 풍경소리며, 작은 인형들도 정겹다. 절을 찾은 이들이 하나둘 쌓아올린 돌탑에서 그들의 간절한 기원이 느껴지는 듯하다.

한여름 더위에 지쳤다면 시원한 약수 한 모금 들이키며 한숨 돌려도 좋다. 경내 곳곳에 피어있는 꽃이며, 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담쟁이들이 사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의 싱그러운 기운과 어울려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고려시대에 세워전 보경사 오층석탑은 적광전 앞에 있어 금당탑으로도 불린다.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주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보경사에는 빼어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보물도 여럿 있다.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와 보물 제430호 부도(浮屠), 보물 제11-1호인 서운암 범종(梵鐘)이 유명하다. 원진국사비는 고려 중기의 명승으로 왕의 부름을 받아 보경사 주지가 되었던 원진국사의 탑비이며, 보경사 뒷산 중턱에 있는 부도는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서운암 범종은 조선시대 숙종 때의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 만들어진 종으로 신라시대 제조 기법을 따른 형태라고 한다. 사인비구가 만든 8개의 종 가운데 제일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늘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눈길이 가다 보니 정작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문화재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내온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보물 3점 외에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오층석탑과 적광전이 있는데 오층석탑은 보경사 경내에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현종 14년(1023)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층석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적광전(寂光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맞배지붕으로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고려 고종 원년(1214)에 원진국사가 중창(重創)하고, 조선 중기 숙종 3년(1677)에 삼창(三創)한 불전이다. 보경사에 남아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건축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미리 알고 갔더라면 좀 더 유심히 살펴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돌아왔을 터인데 아쉬웠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나 보다.

보물이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보경사에서 꼭 한번은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대웅전 뒤편에 있는 큼지막한 비사리 구시가 그것이다. 비사리 구시는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하는 구유다. 비사리는 ‘벗겨놓은 싸리의 껍질’을, 구시는 ‘구유’를 뜻한다. 

보경사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찾아오는 이들을 반겨준다. 한여름 무더위에는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사시사철 변함없는 푸르름으로 절을 호위하듯 서 있다. 소나무숲의 싱그러운 기운이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큰 절에 가면 영화로웠던 시절을 자랑하는 징표처럼 비사리 구시가 하나씩 전각 뒤편에 놓여 있게 마련이다. 나라의 제사 때 절을 찾는 사람들이 밥을 퍼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보경사의 것은 무려 4,000명분의 밥을 담았다고 한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져 뒷방 늙은이처럼 처량하게 버려진 모습이 안타깝다. 따스한 손길로 한번 쓰다듬어 주어도 좋겠다.

보경사도 꽤 여러 번 다녀왔던 사찰인데도 구석구석에 숨겨진 모습이나 내력들을 잘 알지 못한다. 별생각 없이 들러 아름다운 풍광에 흠뻑 취하고 오거나, 찌들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다음에는 미리 공부를 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이번에도 무엇에 쫓겼는지 보경사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음번엔 절보다 더 유명한 보경사 계곡과 내연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만끽해 봐야겠다. 가을 단풍이 무척 아름다운 곳인데, 올가을엔 늦지 않게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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