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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은진미륵의 영험으로 가득 찬 빛의 절 - 관촉사

by 푸른가람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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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는 논산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반야산이라는 나지막한 산에 자리 잡고 있는 관촉사는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고려 광종 19년(968)에 혜명이라는 스님이 불사를 시작해 1006년에 완공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절은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으로 유명하다.

은진미륵의 조성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 스님에게 그 일을 맡겼다.

스님은 100여 명의 공장(工匠)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커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차에 어느날 동자(童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스님은 드디어 불상을 세울 수 있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化現)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상서(祥瑞)로운 기운이 21일 동안 서렸다고 전한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을 굽어 살펴보고 있는 은진미륵은 높이가 18.2미터 둘레가 9.9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이다. 석불로서는 동양 최대 규모다. 중국의 한 스님이 이 은진미륵을 보고 “아침 햇살이 빛날 때 이 미륵불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처럼 빛난다”고 해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관촉사를 찾았던 것도 순전히 이 은진미륵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주문을 지나고 반야교를 건너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 관촉사 경내에 들어서면 멀리 은진미륵(보물 제218호)의 거대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은진미륵을 완성하는 데만 무려 사십년 가까운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깊은 불심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을 굽어 살펴보고 있는 이 은진미륵은 높이가 18.2미터 둘레가 9.9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이다. 석불로서는 동양 최대의 규모다. 옛날에 중국의 한 명승이 이 은진미륵을 보고 아침 햇살이 빛날 때 이 미륵불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처럼 빛난다 해서 관촉사(灌燭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적인 부처님의 형상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토속적(土俗的)인 느낌이 강한데 고려시대 불상이 지방화한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형미(造形美)만 놓고 본다면 결코 잘 만들어진 불상은 아닌 것 같지만 조금은 둔탁(鈍濁)하고 단조(單調)로운 모습이라서 오히려 정감이 간다.

이 미륵보살과 관련된 설화가 하나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 옛날에 오랑캐들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입했을 때의 일이다. 오랑캐들이 압록강의 깊이를 알 수 없어 건너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스님 한 분이 나타나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강을 건너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은진미륵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석등은 관촉사의 또다른 볼거리다. 보물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석등 역시 은진미륵과 같이 만들어졌는데 그 규모에 있어서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의 석등 다음이다. 석등 사이로 은진미륵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에 안심한 적군들도 스님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다 빠른 물살과 깊은 강물에 빠져 목숨을 건진 이가 몇 되지 않았다. 겨우 목숨만 건진 적장(敵將)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스님을 찾아 칼로 목을 내리쳤는데 칼만 부러지고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스님이 바로 이 은진미륵이고 그 칼에 맞아 은진미륵의 모자가 쪼개졌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나라에 큰 재난(災難)이 닥칠 때면 관촉사 은진미륵이 땀을 흘린다고 하니 그저 재미로만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관촉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석등이다. 보물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석등 역시 은진미륵이 만들어진 시기에 같이 만들어 졌는데 그 규모에 있어서 구례 화엄사의 석등 다음이다. 석등 사이로 은진미륵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도 즐겁다. 석등이란 것이 무지한 중생을 부처님의 자비(慈悲)로 밝게 제도(濟度)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어쨌든 이 관촉사는 ‘빛의 절’이라 할만하다.

관촉사 범종각 옆에는 낮은 높이의 석문(石門)이 세워져 있는데 이 석문은 옛날에 관촉사로 들어오던 입구 중 하나였다. 관촉사를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자 이를 막기 위해 담장을 쌓고 사방에 문을 만들었는데 그 중 동문(東門)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지금 남아 있는 석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마당 한켠에는 윤장대(輪藏臺)가 놓여 있다. 예천에 있는 용문사에 갔을 때 법당 안의 윤장대를 본 적이 있는데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흔치 않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넣어 둔 책장이라고 보면 되는데 여기에 축을 달아서 사람들이 돌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經典)을 한번 읽은 공덕(功德)을 쌓는다고 해 절을 찾는 사람들은 몇 바퀴씩 돌려보곤 한다.

절을 둘러보다 따뜻한 봄 햇살을 쬐고 있는 검은 개 한 마리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장난을 걸어봤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제 주인한테만 마음을 주나 보다. 절에 가면 간혹 이런 개들을 만나게 되는데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모두 보살님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꼭 수행(修行)을 하지 않더라도 절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면 절로 성불(成佛)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1914년에 만들어졌다는 현대식 구름다리인 반야교를 건너 관촉사를 내려온다. 벌써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천년을 변함없이 반야산 산자락에서 세상을 빛내고 있는 은진미륵의 따뜻한 미소가 포근히 땅으로 내려앉고 있는 느낌이다. 논산 관촉사는 앞으로도 은진미륵의 빛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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