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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10승투수 한명 없는 투수왕국

by 푸른가람 200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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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선동열감독이 삼성의 새로운 감독자리에 앉았을때 많은 팬들은 기대했다. 고질적인 삼성의 마운드 불안이 이제는 종지부를 찍겠구나. 한발 더 나아가 꿈만 같던 투수왕국의 구현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투수왕국은 해태나 현대 정도쯤이나 돼야 어울리는 말이었다.

 "투타의 극심한 불균형"이라는 단어는 매년 시즌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삼성의 시즌 전망에 빠짐없이 나오던 말이다. 우승을 가로막는 최대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받던 삼성으로선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었지만, 금세기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이라면 그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을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마치 마이스터의 손처럼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만년 기대주였던 불펜 에이스들이 곧장 프로무대를 호령하는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꿈이었다. 삼성이 막강한 불펜의 힘을 앞세워 2005, 2006년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차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중심에는 쌍권총 권혁, 권오준과 오승환이 있었다. 물론 에이스 배영수도 빼놓을 순 없다. 마운드에 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상대팀은 5회만 넘으면 거의 게임을 포기해야 했다. 1점이라도 리드를 지키고 있다면, 막강 불펜진은 그 리드를 쉽사리 상대에 넘기지 않았다.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과도 같았다.

그처럼 견고하던 삼성불펜의 성은 그러나 2년이 채 안돼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대표적인 선수가 권오준이다.

2005년 3승 1패 17세이브(평균자책 2.29), 2006년 9승 1패 2세이브 32홀드(평균자책 1.69)로 삼성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던 권오준은 지난해 3승 5패 6홀드(방어율 3.41)에 그쳤다. 올 시즌 부상에 시달리며 엔트리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더니(올시즌은  19경기에서 3홀드, 평균자책 4.32 기록) 4월 3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뒤 결국은 수술대에 올랐다.

권혁은 예의 싱싱한 강속구를 잃어 버렸고,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 오승환은 나름 선동열감독의 보호를 받았지만 2007년 시즌의 강행군이 독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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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마운드의 자존심이던 배영수는 수술 끝에 올시즌 마운드에 복귀했지만 더이상 에이스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40km 중반을 넘기기 힘든 직구로 근근히 버티는 모습이 안스럽다. 그런 몸을 이끌고 그래도 올시즌 9승(8패)씩이나 올렸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15개의 피홈런을 허용하며 삼성 투수들가운데 1위. 평균자책은 4.72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홈런공장 공장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투수왕국에 10승 투수가 한명도 없다. 물론 정현욱이나 윤성환이 시즌 막판에 중간계투로 나가 행운의 승리를 따내 10승 투수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큰 의미는 없다. 선발투수가 5이닝 채우기도 힘든 투수운영에서 선발투수의 의미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불펜에게 단 1점의 리드를 넘기기 위한 투수들이 바로 삼성의 선발투수일테니까..

까짓거 10승 투수가 1명도 없다고 해서 뭐 큰 대수냐. 외국인투수 2명이 제대로 로테이션만 채우고 최소한의 용병투수로서의 임무가 충실히 수행했다고 한다면 삼성도 지금쯤 10승 투수 한두명쯤은 나왔을 거다. 10승 투수야 그저 상징적인 것일뿐이다. 그런대도 아래 성적표에 나와 있는 각팀 에이스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사실 삼성의 에이스는 정현욱이 맞다. 팀 공헌도에서나 기록적인 면에서나 그를 능가할 투수는 없으니까.(물론 오승환은 논외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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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의 투수 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암울했던 삼성의 90년대 투수 성적표가 이보다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올시즌 선발과 불펜을 정신없이 오갔던 정현욱과 윤성환이 사이좋게 순위표에 이름을 당당히 올려놓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투수출신 감독이 이끌고 있는 투수왕국의 성적표치고는 초라하지 않은가?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와 같은 투수진의 붕괴가 또다른 혹사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올시즌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그야말로 노예처럼 우직하게 삼성의 무너진 마운드를 떠받치고 있는 정현욱이 또다시 권오준의 전철을 밟게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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