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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121

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글이란 것이 이래서 참 좋은 것 같다. 이제는 고인이 된 분의 체취를 이렇게나마 뒤늦게 책을 통해서 맡을 수 있으니 말이다. 故 박완서 선생님의 기행 산문집 '잃어버린 여행가방'은 지난 200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한참이나 늦게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는 내 취향 탓이었다. 문필로 치자면 국내 어느 작가에게도 뒤질 것이 없느니만큼 과연 그 분은 여행을 통해 어떤 것을 느꼈을까가 무척 궁금했다. 일반인 혹은 여행작가가 아닌 순수 문학인의 손끝에서는 얼마나 주옥같은 작품이 탄생할까 기대도 사실 컸다. 이 책은 박완서 선생님이 평소 즐겨 찾던 국내 여행지와 몇차례의 해외 여행에서의 소회를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역시 아름다운 우리땅의 여행 기록에 눈길이 간다. 남.. 2012. 5. 2.
파페포포 투게더 - 더불어 함께 사는 삶 속에서의 행복 외로움에 지쳐 있을 때 언제든 달려와 위로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나는 참으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나는 요즘 빚을 갚기 위해 애쓰고 있다. 때때로 삶에 위안이 되어주곤 했던 카메라를 처분했고, 내가 가진 것 중에 값나가는 것들이 있나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렇게 모으고 모아 봐도 빛을 갚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좀처럼 늘지 않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나는 오늘도 뜬구름처럼 허망하다는 물욕의 끝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몇푼 안되는 빚에 마음을 쓰고 있는 동안 파페포포의 작가 심승현은 친구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이야기하고 있다. 외로움에 지쳐 있을 때 언제든 달려와 위로해주었던 친구들이 있어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빚이라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 종류의 빚이라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닐.. 2012. 4. 26.
파페포포 레인보우 - 내 마음에 뜨는 일곱 빛깔 무지개 심승현 파페포포 시리즈 그 네번째 책인 파페포포 레인보우. 책의 제목답게 빨주노초파남보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로 각각의 테마를 잡았다.Blue Dream, Red Love, Yellow Tears, Green Peace, Orange Harmony, Indigo Passion, Purple The Colors of You가 바로 그것들이다. 사람들마다 색을 보고 연상되는 이미지는 다를 것이다. 누구는 파란색을 보고 젊음과 열정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우울함과 죽음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반면에 붉은 빛에서 지은이 심승현처럼 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열과 상반되는 죽음의 그림자를 연상하는 이도 분명 있을 거다. 무얼 떠올리든 그 각각의 색들이 하나로 합쳐진 일곱빛깔 무지개는 누구나에게 희망이었음 좋겠.. 2012. 4. 25.
파페포포 메모리즈 -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카투니스트 심승현의 다섯번째 책이 곧 출간될 모양이다. 한 출판사에서 보내온 신간 예약판매 안내 메일을 보다가 심승현의 예전 그림과 글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해 전에 그의 세번째 책인 파페포포 안단테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의 첫 작품이 세상에 나온 2002년 이후 그의 글들과 그림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궁금하기도 했다. 개정판 프롤로그에서 그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네 너무나 사소해서 가볍게 지나치는 일상들이 켜켜이 쌓여 비로소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부하게 느껴지기조차 하는 사랑, 추억, 우정, 가족 같은 단어들에 다시 밑줄을 치며 함께 공감하고 싶어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노라고. 공감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나 역시 .. 2012. 4. 16.
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지금 살아있는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했고, 사료 조차 남아 있지 않는 고대사는 미스테리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그 미지의 시대에까지 확장해서 펼쳐보곤 한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일 뿐이라면 그 무한한 상상력은 존중받아 마땅하겠지만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그 호기심의 순수성은 곧바로 훼손되고 만다. 나 역시도 오래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읽었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에 대한 반감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증산도로 이끌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을 통해서 웅대했던 우리 민족의 기상과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고대사를 만나 보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알맹이 없는 공허함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식민사관이라는 이.. 2012. 4. 11.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가 아닌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제목은 내가 바라보는 나를 참 적나라하게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럼 과연 어른이 된다는 건 뭘 의미하냐고 물어온다면 그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히 대답하기 어렵긴 하지만, 어쨌든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난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단지 나이를 먹고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큰 자동차를 굴리고 하는, 어찌보면 평범하게 보이는 인생의 일정을 밟아가고 있는 걸 얘기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인생이 한없이 서글프게 느껴질 테니까. 그렇다면 이런 정의는 어떨까? 더 이상 꿈이라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것... 2012. 4. 8.
꽃 피는 삶에 홀리다 - 손철주 에세이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났다.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며 그림 이야기를 해왔던 손철주의 에세이 '꽃 피는 삶에 홀리다'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처럼 마치 책 속에 담긴 글에, 그림에, 시에 홀린 기분이다. 등 이전에 나온 그의 책을 미처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그래서 더 커진다. 이 책은 크게 세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은 책의 제목과 같은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제2장은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봄날의 상사를 누가 말리랴'는 이름을 제각기 달고 있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는 첫 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일상의 담백한 이야기와 느낌이 담겨있는 것이 좋다.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가련하다, 한 해의 봄날이여 오고.. 2012. 4. 1.
인도, 그 아름다운 거짓말 사람들은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책이나 신문, 방송을 통해 포장되거나, 혹은 왜곡되거나 확대 재생산된 이미지에 현혹 당하는 경우도 많다. 인도를 생각하면 무수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카스트의 나라, 신들의 나라, 새롭게 급부상하는 IT 강국, 혼란과 무질서, 힌두교와 흰 소, 갠지스강... 이런 무수한 단어들 속에는 또한 인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꿈과 염원이 투영된 면도 있으리라.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재단된 인도의 모습, 그것을 '아름다운 거짓말'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나름 추측해 보게 된다.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인 모임이라는 다소 거창한 단체 명의로 펴낸 "인도, 그 아름다운 거짓말'.. 2012. 3. 25.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 - 틱낫한이 전하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 먹고 살만한 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궁핍함을 느낀다. "행복"이란 언제나 그랬듯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육체의 배고픔은 해결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정신의 허기를 채울 수 없으니 사람들은 잡힐 듯 하면서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사막의 신기루와도 같은 행복 찾기에 저마다 열심이다.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라"에는 인류의 정신적 멘토이자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생불(生佛)로 불리는 틱낫한 스님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며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평생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2012. 3. 22.
책과 여행과 고양이 - 최병준의 여행공감 독특하게도 지은이의 서문이 없는 책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 담당기자로 살아온 최병준이라는 사람은 그래서 자신의 삶과도 같은 여행을 23개(엄밀히 셈하자면 24개)의 키워드로 표현해 냈다. 그 키워드를 책과 함께 풀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책 제목도 '책과 여행과 고양이'로 뽑아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키워드로 그간의 경험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은 그간의 여행의 행로가 아직은 짧고 보잘 것 없기 때문이요, 그것을 담아낼 글솜씨도 사진 실력도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잘 다듬어진 글솜씨와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 한장한장이 부럽기만 하다. 공항은 여행을 향한 열정을 생산해 내는 곳이다. 공항은 연인과 비슷하.. 2012. 3. 19.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숲을 즐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좋은 방법은 우리 주변의 어떤 숲에서나 자기 스스로 풍경 속의 한 점경(點景)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냥 숲 바닥에 널려 있는 바위에 걸터앉거나 또는 숲 바닥에 그대로 퍼질러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모두 번다하거나, 혹은 하나가 고요하더라도 다른 하나는 번다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 오는데, 어떻게 하면 한 순간이라도 몸과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절집 숲은 물론이고, 어떤 숲이든 찾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온전히 머무는 일에 집중한다. 시간과 공간의 합일에 의해 만들어진 풍광 속에 놓인 나 자신에 .. 2012. 3. 17.
바람이 지은 집 절 세상 모든 절집은 바람願이 지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바란다. 흔히들 '이것만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그 바람은 무망하다. 바람의 목록은 무한정 늘어난다. 비루한 욕망에서 해탈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바람이다. 그 간극은 아득하여서 야차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에 걸친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불보살이 우리 곁으로 왔다. 절집이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절을 좋아한다. 불심이 충만한 신자도 아니건만 목적지 없는 떠남의 끝에는 늘 절이 있었다. 그런데 절에 갔다고 해서 법당에서 절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 자체 보다는 절과 속세의 경계를 그어 주는 듯 상쾌한 절의 숲길과 오직 바람이 울려주는 풍경 소리만이 고요함을 일깨우는 그 느낌.. 2012.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