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는 즐거움

책과 여행과 고양이 - 최병준의 여행공감

by 푸른가람 2012. 3. 19.
728x90


독특하게도 지은이의 서문이 없는 책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 담당기자로 살아온 최병준이라는 사람은 그래서 자신의 삶과도 같은 여행을 23개(엄밀히 셈하자면 24개)의 키워드로 표현해 냈다. 그 키워드를 책과 함께 풀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책 제목도 '책과 여행과 고양이'로 뽑아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키워드로 그간의 경험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은 그간의 여행의 행로가 아직은 짧고 보잘 것 없기 때문이요, 그것을 담아낼 글솜씨도 사진 실력도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잘 다듬어진 글솜씨와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 한장한장이 부럽기만 하다.


공항은 여행을 향한 열정을 생산해 내는 곳이다. 공항은 연인과 비슷하다. 출발할 때는 막 사귄 애인처럼 설레지만, 돌아올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연애를 통해 인생을 배우듯이 공항은 인생을 배우는 곳이다. 여행을 알아가는 곳이 공항이다.  -P.19 공항

해외여행 경험이 딱 한번 뿐이긴 하지만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는 풍성하다. 마치 어느 시골역 같았던 중국 국내선 공항에서 바라보던 이국 밤하늘의 별들도,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불편한 잠을 청해야 했던 악몽같았던 시간들도 이제는 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감성을 자극한다.

다음에 공항에 가게 된다면 지은이의 충고대로 여행 초보 티를 내지 않게 옷차림은 허름하게 하는 편이 좋겠다. 언제 읽다 덮어도 상관없는,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책 한권과,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안되는, 두꺼운 양장표지가 붙은, 단어의 뜻이 맞나 틀리나 해석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책, 이렇게 두권의 책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개 같은 여행을 해왔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양이 같은 여행'이 그리워진다. 늙어갈수록 고양이처럼 늘어지고 자유롭고 도도해지고 싶다."


지은이는 여행도 개 같은 여행이 있고, 고양이 같은 여행이 있다고 표현했다. 가난한 여행자들의 낙천적인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아쉬워서 늘 몸을 낮은데로 굴리는, 그래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쉬고 싶으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여행이 개 같은 여행이다. 천하고 더럽다는 게 아니라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여행자들의 여행법이다. 

이에 반해 고양이 같은 여행은 좀 까다롭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처럼 호텔을 가리고, 식당을 가리는 깔끔한 여행법이다. 늦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뒹굴거리면서 책이나 읽는 여행이 바로 고양이 같은 여행이라 지은이는 규정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 개 같은 여행보다는 고양이 같은 여행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의 시작 / 공항, 호텔, 관찰
여행의 풍경 / 개, 고양이
여행의 체험 / 미술관, 건축, 사진
여행의 친구 / 커피, 맥주, 담배
여행의 여정 / 걷기, 열차, 택시와 버스
여행의 아름다움 / 밤, 백야, 로맨스
여행의 즐거움 / 에티켓, 패스트푸드, 슬로푸드
여행의 가르침 / 종교, 탐험가, 우주여행


아마 내가 나중에 여행에 관한 책을 쓰게 된다면 분명 그 책에 담길 키워드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들과는 다를 것이다. 물론 사진이나 맥주, 커피, 밤, 기차, 버스, 로맨스 같은 것은 여행의 공통분모가 되어 줄 수도 있겠지만 공항보다는 허름한 시골역이나 터미널이, 호텔보다는 민박집이나 여관이, 미술관보다는 폐교를 개조한 예술가의 갤러리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게 될 것 같다.

어느 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개 같은 여행보다 고양이 같은 여행이 우월할 수 없듯 그것은 그저 여행자의 여행의 방식일 뿐이다. 그것이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이든, 우리가 곁에서 늘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이든 문제가 되질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여행을 통해서 충분히 설레고, 즐겁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그걸로 충분히 된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