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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거꾸로 보는 고대사 - 민족과 국가의 경계 너머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

by 푸른가람 2012.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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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아있는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했고, 사료 조차 남아 있지 않는 고대사는 미스테리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그 미지의 시대에까지 확장해서 펼쳐보곤 한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일 뿐이라면 그 무한한 상상력은 존중받아 마땅하겠지만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그 호기심의 순수성은 곧바로 훼손되고 만다.

나 역시도 오래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 시절 읽었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에 대한 반감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증산도로 이끌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을 통해서 웅대했던 우리 민족의 기상과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고대사를 만나 보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알맹이 없는 공허함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식민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의 자존과 주체성에 대한 훼손이 심했던 탓에 우리 사회는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가 깊이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수많은 TV 드라마들이 우리의 웅대했던 고대사를 자랑하듯 속속 제작됐고 역사 학계에서도 이와 같은 기조에서 우리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강해지는 듯한 분위기다.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지나치게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이 심화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겠다. 하루이틀 문제가 아닌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다 얼마 전부터 중국까지도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자국 중심의 역사 왜곡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수천년 전의 일을 21세기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거꾸로 보는 고대사'의 지은이 박노자 교수도 민족과 국가 경계 너머의 한반도 고대사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과연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단군신화에서 파생된 견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경략했다고 믿고 있는 광활한 만주 땅이 온전히 우리 것이었으며, 우리가 만주를 잃어버린 고토라고 여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독자들을 향해 던지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조선학과를 졸업했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재직중인 박노자(러시아 이름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교수는 정복과 확장이 아닌 평화와 교류의 시대로서의 고대사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의 에필로그를 통해 '고여있는' 민족사 대신 '흘러가는' 고대사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 국사 교과서의 기본 틀인 국가와 민족 이야기는 일제 침략기 시절에 민족주의 사관으로서의 의미는 있었지만 지금은 수천년 전에 그러했듯 '서로 스며듦'으로서의 역사 인식이 요구된다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세웠던 고대 국가들의 위대성이 아닌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물적, 인적, 사상적 흐름과 국가가 아닌 민중을 서술 대상으로 삼은 이 책은 자신의 역사 서술을 일종의 '역사적 상상력의 반란'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래에 이 반란이 성공을 거둬 역사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전쟁 보다 민중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주목하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의 바람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또한, 수천년 전 이땅의 선조들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의식이 지금처럼 정립되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가정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 고대사의 중심을 지나치게 한반도에 국한시켜 보고 있다는 점이나 위서 논란이 있는 일본서기 등 일본 문헌의 내용들에 집착을 보이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또한 그러한 가정은 중원의 지배자로 자임하고 있는 중국 역사를 바라볼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한국에 귀화한 러시아인으로 우리 고대사에 대해 나름 많은 연구를 해왔으며, 외국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우리 고대사를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는 객관적 위치에 있다고 보는 데도 무리가 있다. 어차피 실증적인 검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박노자 교수 개인의 역사 인식이 우리 고대사에 대한 또다른 오해를 확산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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