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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문재인의 운명 -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기를

by 푸른가람 201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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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쉽게 운명이란 말을 하곤 한다. 운명적인 만남, 운명적인 사랑 이렇게 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운명이란 단어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운명은 우리들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운명이란 말은 인간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을 펴냈다. 요즘 그는 차기 대권주자의 한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언론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이어 선호도 3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문재인 이사장은 법조인으로 출발해 기존 정치권 인사들과는 다른 사회 운동가의 길을 걸어왔고, 정치판에 뛰어들 의사를 내비추고 있지도 않다. 그런 그가 야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분명 문재인 이사장 본인 의사로 정치판에 뛰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국민들은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일부 정치 평론가는 문재인 이사장에게 강력한 '권력 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차세대 정치 지도자 후보군에 올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평한 바도 있지만 향후 그가 어떤 식으로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야권 통합, 또는 연대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이 또한 그가 책에서 밝혔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운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재인의 운명'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이 1982년 부산에서 합동법률사무소 동업자로 처음 만나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 이후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과 비서실장으로 인연을 이어 왔던 과정을 담담히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인간 문재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 이라는 책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성공은 성공대로, 뼈아픈 좌절은 좌절대로 있는 그대로 복기해야 하노라고."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이며 그 과정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하고,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고 조용하지만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쓴 회고록 : http://kangks72.tistory.com/938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느껴진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변호사 문재인이 부산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문재인 이사장은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았어도 명예와 부가 보장된 안락하고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도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운명이란 것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테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하나는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법장스님이 남기셨다는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입도 없고 밑도 없다.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는 말이다. 짧은 말이지만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여운이 오래동안 남아 있다.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 물을 보라 다시 맑아지며 / 먼 길을 가지 않는가 /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저자가 서문에서 소개한 도종환 시인의 '멀리 가는 물'이라는 시도 가슴 뭉클하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끊임없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물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 시를 보면서 지금의 나도 이미 더럽혀져 멈추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와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고 멀리 가는 물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보게 됐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함께 흘러가는, 비록 작고 하찮은 물줄기일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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