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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by 푸른가람 2011.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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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책들을 몇권이나 사 모았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처음으로 펴 든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순서대로 한다면 세계 각국의 오지를 다녀온 이야기들을 먼저 읽는 게 맞겠지만 우리 땅 구석구석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내게는 왠지 이 책에의 끌림이 확실히 더 강했던 것 같다.

사실 한비야 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세계의 오지들을 탐험하고, 국제 NGO 단체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정도.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무릎팍 도사'라는 TV 토크쇼에 출연한 그녀가 들려줬던 경험들은 꽤나 흥미롭고, 또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줬던 것 같다.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한비야가 전라남도 땅끝 해남에서 동쪽 육지의 끝(현재 우리가 발로 닿을 수 있는)인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800km의 거리를 1999년 3월 2일부터 4월 26일까지 49일간 걸었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우리 땅 구석구석의 숨겨진 풍경들은 늘 볼 수 있는 흔한 것들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늘 허투루 지나쳤던 것들이기도 하다.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우리땅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을 즐기곤 한다. 살다보면 내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일이란 걸 느끼게 된다. 때로는 시간이 부족하고, 때로는 차비나 기름값이 부족하거나, 결정적으로 건강이 허락되지 않는 억울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돈이 없으면 또 없는대로 많이 다니고, 그 속에서 많이 느껴봐야 한다. 늘 대하게 되는 풍경, 만나는 사람들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누군가 말했듯 '세상은 넓고' 보고 느낄 것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새로운 곳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나를 좀더 강하게 단련시키고, 또한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비타민과도 같다.

한때 자전거 전국 일주를 꿈꿔 본 적은 있었지만 도보로 우리나라를 종단해 보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가녀린 여자 몸으로 그 멀고 힘든 여정을 소화해 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머뭇거리지 않고 일단 몸으로 부딫치며 이뤄낸다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늘 생각에만 머물고, 주저하다 시간만 보내는 사람에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이 무얼까를 생각해 본다.

한비야가 우리 땅을 두 발로 걸었던 1999년 3월에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봤다. 세상에 나갈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IMF 사태의 직격탄을 받은 그때의 나는, 돌아보면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 조차 없었던 것 같다. 뭘 해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말그대로 '밥벌이의 고민'이 사고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으리라.

무려 십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지금. 그때 한비야가 밟았던 땅들과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내가 걷게 될 이 땅의 풍경들도 그리되겠지. 그 땅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고 골프장으로, 도로로 바뀌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그 여행의 출발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

어제는 모처럼 의성 고운사에 들렀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광덕당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풍만한 젖가슴같은 등운산과 그 위를 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우리네 인생이 또 저 구름처럼 덧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남은 인생은 덧없는 구름이 아니라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산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 쓴소리 몇가지만 하자면..내 고향 상주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야박하더군요. 상주 사람들은 너른 들처럼 순박하고 달작지근한 곶감처럼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만. 개정판 말미에서 작가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긴 하지만 과거 이 책을 읽었던 수많은 독자들의 머릿 속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새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하나, 작가님은 법이나 규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리에 많지 않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규제들이 우리네 삶을 간섭하고 귀찮게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무시하거나 혹은 힘있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받는 특혜를 당연시 하는 모습은 좀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다 옛날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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