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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54

사진 찍기에 좋다는 경산 반곡지를 느린 걸음으로 걷다 모처럼 평일 오후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어딜 가볼까 잠깐 고민하다 말로만 듣던 반곡지를 둘러 보기로 마음 먹었다. 경산 반곡지는 이미 사진찍는 이들 사이에선 '사진 찍기 좋은 곳' 혹은 '경산의 무릉도원'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명소다. 사진으로 많이 봤던 곳이었지만 실제 느낌은 어떨까 그 전부터 많이 궁금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반곡지의 오래된 버드나무 아래 그늘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즐기는 일행들이 여럿 있었다. 손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이내 도착해서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제 각각의 감상을 풀어놓고 있었다. 반곡지에서 청송 주산지의 신비로운 풍경을 떠올리는 이도 물론 있었다. 반곡지는 그리 넓지 않은 저수지다. 역시 첫 시선은 반.. 2012. 6. 30.
산중에 깊숙히 숨어 있는 산사, 각화사를 찾아서 각화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산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산중에 깊이 숨어있는 각화사를 찾아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고 올랐다. 도중에 과수원도 만나고 인적 드문 산 속에 홀로 있는 집들도 만났다. 아침에 눈 떠서 깊은 밤에 잠들 때까지 이런 풍경을 단 한번도 볼 수 없는 일상의 삶에서 비로소 벗어났음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 마침내 각화사에 이르렀다. 각화사 입구의 푸른 숲이 인상적이었다. 전날의 숙취 때문인지 절 구경보다는 그냥 어느 그늘 시원한 곳에 자리를 깔고 낮잠이나 한숨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5월이라고는 해도 낮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이른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한 그런 날이었다. 평지가 없는 산자락에 절이 자리잡다.. 2012. 5. 29.
아는 만큼 보이는 김룡사의 숨겨진 보물들 나름대로는 김룡사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오산이었다. 몇해 전에 처음 김룡사라는 멋진 절을 처음 가보고 나서는 뭔가에 이끌리듯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이 곳을 여러번 찾았었다. 김룡사 숲길도 무척 마음에 들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일주문에 이르는 전나무숲의 싱그러움이 인상적이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31본산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조계종 제8교규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그리 큰 절이 아니어서인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언제 와도 사람 소리가 많이 나지 않는 절이라서 더욱 좋았다. 이 호젓한 산사를 홀로 즐기는 호사를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김룡사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놀랍게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석탑과 석불을 절.. 2012. 5. 15.
분황사 앞 유채꽃밭에서 풍성한 가을 들판을 떠올리다 봄날에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면 반월성 앞이나 보문단지 혹은 김유신 장군 묘 인근의 벚꽃을 보러 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좀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거나 유채꽃의 샛노란 투박함이 좋다면 분황사 앞 황룡사지에 조성되어 있는 유채꽃밭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곳에도 몇 해 전부터 꽃밭이 조성되었는데 봄에는 유채꽃을, 한여름이 지나면 금계국을 심는다. 벚꽃과 어울어지는 반월성 앞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좀더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유채의 향연이 선사하는 풍경이 그곳에 못지 않다. 동양 최고(最高)의 9층 목탑을 가진 장엄하고 웅장했을 황룡사의 영화는 이제 폐사지의 땅 속에 묻혔지만 후손들은 그 위를 꽃에 취해 거닐고 있다. 이 곳에서 서서 유채꽃밭의 장관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늦가을의 누.. 2012. 5. 1.
유채꽃의 샛노란 물결 속 경주의 봄날을 거닐다 우리나라에 경주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단 신라 천년의 고도라는 식상한 수식이 아니더라도 경주에 들어서면 뭔가 느낌부터가 다른 것 같다. 불어오는 바람 내음이 다르고 공기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익숙한 누군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언제나 경주를 생각하면 노곤한 졸음이 오는 지도 모르겠다. 그 좋은 도시에 이십여년 이상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그 곳에 살 때는 그걸 몰랐다. 늘 마주치는 문화재들은 지루했고 법률로 변화를 억압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의 삶은 답답함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답답했던 도시가 이제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경주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 2012. 4. 29.
펑지에 자리잡은 돈암서원에서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다 논산, 계룡이라는 고을에서는 사계 김장생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모양이다. 사계 고택 두계 은농재를 지나 논산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돈암서원 역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의 후학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호남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그 명맥을 유지한 서원이기도 하다. 사실 돈암서원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 외에도 그의 아들인 김집, 송준길과 송시열의 위패를 사당에 봉안하고 있는 노론의 대표적인 서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연산지역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광산 김씨 가문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주는 유물이 아닐까 싶다. 대구, 경북지역의 수많은 서원들을 .. 2012. 3. 3.
따뜻하고 평안했던 '다각적 추론의 집' 명재고택 건축가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마지막에 명재 윤증고택이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 이른 봄에 충남 일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적지 중의 한곳에도 이 오래된 옛집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을 뵙고 오느라 지체했던 탓에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다음으로 미뤄야 했었던 그날의 아쉬움을 1년이 지난 후에야 풀 수 있었다. 명재고택을 찾았던 날은 마치 봄날 같았다. 한낮 햇볕의 너무나 따뜻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 하다. 홀로 걷고 있어도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햇볕을 받아 온기가 감도는 마루에 앉아 오래된 나무의 감촉을 손으로 매만지며 그 따뜻함을 만끽하던 찰나의 행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오래되고 말없는 것들.. 2012. 2. 26.
봄날처럼 따뜻했던 어느 겨울날에 찾았던 경주 최부자집 모처럼 따뜻한 봄날같은 하루였다. 일렁이던 겨울 바람도 잦아 들었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상쾌함에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던, 이날의 갑작스럽던 경주 여행은 날씨만큼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이 몇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경주 교동의 최부자집은 그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찾아들고 있었다. 몇해 전 겨울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참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건물도 들어서고 해서 활기를 띤다. 오히려 인근의 여러 공사로 인해 원래의 한적함과 고풍스러움이 오히려 퇴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 정도다. 경주 인근에서 이집 땅을 밟지 않고 돌아다니기 어려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부자집의 재력은 엄청났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있었다 .. 2012. 1. 30.
새해 첫날, 고운사에서 절하다 새해 첫날에 의성 고운사를 찾았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운사를 찾아 왔지만 이날처럼 고운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해 첫날이라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절하러 오신 분들이 저 말고도 또 많았던 가 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절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 고즈넉한 산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욕심은 또 여전합니다. 사람들과 차량의 번잡함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고운사는 모처럼 조계종 본사에 어울리는 분주함을 모처럼 되찾은 것 같아서 저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하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한 것일테니까요. 절을 자주 찾아다니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무엇이 가로막았.. 2012. 1. 3.
예천 초간정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구나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하였던가요. 맞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데 사람들의 모습만 달라졌습니다. 2년전 여름날 처음 초간정을 찾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초간정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제게 이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절로 읊어질 것 같은 예천 초간정 : http://kangks72.tistory.com/758 2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새벽 일찍 회룡포에서의 일출을 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절정을 달리고 있는 계절답게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탁류 속에 가려져 있던 개울도 지금은 맑은 물빛을 되찾았습니다.. 2011. 12. 25.
솔숲 너머 푸른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 울진 월송정 월송정의 모습은 늘 변함이 없어 단조롭기까지 하다. 영화 속 월송정의 모습은 꽤나 낭만적이고 운치있어 보였는데 정자 자체는 크게 감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무언가 규모로 압도하는 맛이 있다거나,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무게감이 있는 것도 이나라서 올 때마다 조금 심심함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월송정이라는 정자 자체보다는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소나무숲, 혹은 마치 월송정의 앞마당인 것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과 푸른 동해 바다에서 이 곳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인근의 이름난 해수욕장과 달리 이곳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금도 철책이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작은 문을 통해 철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열려있는 해수욕장이나 해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금단의 구.. 2011. 12. 23.
비에 갇혀있던 운문사에서 주인이 되다 여행을 다닌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흐린 날은 흐린대로, 비가 오는 날은 또 그런대로 맛과 정취가 있는 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란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왕의 여행길이 화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욕심입니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 한장 건질 것 같은 기대조차 들지 않은 그런 날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그런 날도 있는 법입니다. 무작정 일을 접고 운문사로 떠났던 어느 여름날도 그러했습니다.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요, 운문사에 푹 빠져 있는 것도 아닌데 정처없는 떠남의 행선지가 운문사였던 것도 묘한 일입니다. 인연이라 부릅니다.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은 그저 인.. 2011.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