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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봄날처럼 따뜻했던 어느 겨울날에 찾았던 경주 최부자집

by 푸른가람 201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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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따뜻한 봄날같은 하루였다. 일렁이던 겨울 바람도 잦아 들었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상쾌함에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던, 이날의 갑작스럽던 경주 여행은 날씨만큼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이 몇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경주 교동의 최부자집은 그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찾아들고 있었다.





몇해 전 겨울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참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건물도 들어서고 해서 활기를 띤다. 오히려 인근의 여러 공사로 인해 원래의 한적함과 고풍스러움이 오히려 퇴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 정도다. 경주 인근에서 이집 땅을 밟지 않고 돌아다니기 어려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부자집의 재력은 엄청났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있었다 해도 경주 최부자집이 지금처럼 존경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말 그대로 가진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했음에 있을 것이다. 굶는 이가 없도록 하고, 찾아온 손님 접대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았겼을 때 독립운동에 전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날씨 좋은 토요일 오후 이 최부자집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은 그 옛날 이야기들을 알고 있을까. 그들이 그저 교동 법주의 명성에 이끌려, 혹은 요석궁에 들러 요기나 할 요량으로 왔다 잠시 들렀다 가는 것이라면 아쉬운 일이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고택 몇채만 보고 갈 것이 아니라 경주 최부자집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 가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목적이 되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따스한 햇볕이 나른함을 불러온 것인지 최부자집을 지키던 견공이 마냥 흐트러진 모양새로 한숨 늘어지게 자고 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고택 마루에 홀로 앉아 계시던 어르신의 모습에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천년고도 경주에 오면 그 오랜 세월의 무게만큼 발걸음도 조금은 더 더디게 옮겨야 하는 것인가 보다. 돌아나오는 길을 고목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나 여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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