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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유채꽃의 샛노란 물결 속 경주의 봄날을 거닐다

by 푸른가람 2012.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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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경주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단 신라 천년의 고도라는 식상한 수식이 아니더라도 경주에 들어서면 뭔가 느낌부터가 다른 것 같다. 불어오는 바람 내음이 다르고 공기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익숙한 누군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언제나 경주를 생각하면 노곤한 졸음이 오는 지도 모르겠다.







그 좋은 도시에 이십여년 이상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그 곳에 살 때는 그걸 몰랐다. 늘 마주치는 문화재들은 지루했고 법률로 변화를 억압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의 삶은 답답함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답답했던 도시가 이제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경주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사시사철 그 계절에 걸맞는 볼거리가 있고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날의 경주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봄날의 경주를 떠올리면 나는 흰 벚꽃과 노란 유채꽃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는 4월 초순의 풍경이 머리에 그려진다.







물론 벚꽃은 어디서 피나 아름답고 화려하다. 벚꽃의 대표 축제격인 군항제가 열리는 진해도 좋고, 어느 시골 이름없는 길가에서 제 혼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벛꽃도 아름답다. 하지만 경주 반월성 앞 풍경처럼 샛노란 물결이 넘실대는 가운데 흰 꽃눈이 날리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쉽게도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마다 이 곳의 벚꽃과 유채꽃은 때가 되면 피어 나겠지만 '제 때'를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게다가 벚꽃은 화려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피었나 싶으면 때맞춰 불어오는 봄비에 제 잎을 모두 날려버리고 만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바람에 날리고 비에 젖어 떨어진 꽃잎들은 마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의 화려한 시체인 듯 싶다.











올해도 때를 놓쳤다. 벚꽃은 이미 다 졌고 유채꽃은 아직 절정을 맞지 않았다. 이렇듯 자연은 끊임없이 제자리를 돌듯 순환하지만 나무 아래 누워서 입으로 사과가 떨어져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으른 인간에겐 제 속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법인가 보다. 무심한 계절을 아쉬워 하기보다는 다시 못올 2012년의 봄을 흘려보낸 나를 탓하며 꽃향기와 4월의 봄햇살에 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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