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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펑지에 자리잡은 돈암서원에서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다

by 푸른가람 201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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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계룡이라는 고을에서는 사계 김장생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모양이다. 사계 고택 두계 은농재를 지나 논산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돈암서원 역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의 후학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호남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그 명맥을 유지한 서원이기도 하다.





사실 돈암서원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 외에도 그의 아들인 김집, 송준길과 송시열의 위패를 사당에 봉안하고 있는 노론의 대표적인 서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연산지역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광산 김씨 가문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주는 유물이 아닐까 싶다.







대구, 경북지역의 수많은 서원들을 직접 돌아본 내게 이 돈암서원은 참으로 특이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지에 터를 잡고 있는 서원은 내겐 처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원의 기본적이 배치는 그대로 이어받았으면서도 부속 건물의 배치와 건물의 형태에서 영남의 그 고집스러움과 다른 자유분방함을 느끼게 해 준다.










서원의 강당 격인 응도당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건물 자체가 위풍당당함을 보이면서도 한편 투박한 정서가 느껴져서 좋다. 따뜻한 봄날 햇살이 마루에 내려앉아 그 온기가 내 몸에 절로 전해진다. 이미 죽어 건물의 한 부분이 된 나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온기를 전해주는 듯한 그 따뜻함이 너무나 좋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돈암서원은 계단도 없고 석축도 없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평면적인 느낌이다.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경쾌함이 없다. 눈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평지가 많은 이 지역에 굳이 가파른 산지처럼 단을 만들고 석축을 쌓을 필요야 없었겠지만 입체감이 사라진 아쉬움은 짙게 남는다.






기록에 따르면 돈암서원은 원래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으나 서원의 지대가 낮아 뜰 앞에까지 물이 차자 고종 18년(188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전학후묘식 배치를 보이고 있지만 앞면에 위치한 강당이 중심축에 놓이지 않고 약간 서쪽으로 직각 배치되어 있고 응도당은 입덕문을 들어서자마자 동향으로 직각 배치되어 있다.






돈암서원에서 누군가는 사계 김장생이 죽어서도 후학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는가를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서원 건축의 독특함에 매료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파란 경상도 땅이 아닌 둥글고 평평한 충청도 땅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생각했다. 또한 그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기질 속에 묻어있을 그 느림의 미학이 가진 무서운 힘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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