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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2010년 플레이오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였다

by 푸른가람 201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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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힘드네요. '생명 단축 시리즈' 라는 별명처럼 오늘 경기도 역시 1점차 승부로 끝났습니다. 이건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만큼 2010년 플레이오프는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치열한 혈전이었습니다. 승리의 여신은 마지막에 삼성을 향해 웃어 주었습니다만 사실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양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멋진 승부였습니다.

두산으로선 롯데와의 준PO에서 2연패 후 3연승이라는 기적을 쓰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전력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2위 삼성에 업셋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시리즈 무대 일보 직전에서 아쉬운 눈물을 쏟아야만 했습니다. 2010년 해와 달의 싸움은 결국 해가 뜨고 달이 지게 됐네요.

앞선 포스팅에서도 얘기했지만 이번 플레이오프는 명승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승리를 향한 양팀 선수들의 집념과 5차전 모두 한점차 승부가 말해주듯 팽팽한 박빙의 승부는 국민들에게 야구의 묘미를 제대로 선사했습니다. 만약 신들이 이 드라마를 썼다면 세련된 마무리를 지었겠지만 이번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뽑은 PO MVP는 바로 너, 스무살 겁없는 신예 김상수

물론 KBO가 뽑은 플레이오프 공식 MVP는 박한이입니다. 박한이는 1차전에서 8회말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린데 이어 4차전에서도 결승점이 된 희생타를 터뜨리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MVP는 따로 있습니다.

그는 바로 삼성의 2년차 유격수 김상수 바로 그 녀석입니다. 경기 초반 0:5도 뒤지며 패색이 짙던 경기를 뒤집은 데에는 김상수의 공, 수, 주에 걸친 대활약이 디딤돌이 됐습니다. 5차전에서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터뜨렸고, 안정된 유격수 수비로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준데다 11회말 마지막 공격에서는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재치있는 주루플레이까지 선사했습니다.

누가 이 선수를 생애 첫 포스트시즌에 뛰고 있는 선수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김상수를 보면 전통적인 삼성표 선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리고 경험없는 선수가 이렇게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경기에서 이런 노련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한국시리즈에서의 김상수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한경기, 한경기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5차전 승리의 일등공신 장원삼

사실 선동열감독 욕 많이 했습니다. 잠실구장에서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마땅히 1차전 선발이 되었어야 할 선수를 3차전 선발로 돌려 투수 운용을 꼬이게 했으니까 말이죠. 게다가 3차전 선발로 잠실구장 마운드에 선 장원삼은 초반을 버티지 못하고 강판당하며 3차전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습니다.

역시 큰 경기 경험이 없는 선수의 한계인가 했는데 5차전에서 그 진가를 확실히 발휘했습니다. 6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11회까지 무려 6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습니다. 사실상 불펜진이 붕괴된 삼성 마운드 여건을 고려해 본다면 오늘 장원삼의 호투는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삼성의 투수진 운영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조짐을 보여줍니다.


두산의 키플레이어 이종욱의 교체, 결국 두산의 패인이 되다

오늘 경기의 승인과 패인을 두고 여러 말들이 많겠지만 긴 호흡으로 보자면 제가 생각하는 두산의 패인은 이종욱의 교체에 있다고 봅니다. 두산이 4:0으로 넉넉하게 앞서던 상황에서 추가 득점 챤스를 맞지만 이종욱이 보내기 번트에 실패한 후 병살타를 치며 추가 득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맙니다.

분명 이종욱이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지만 이것 때문에 섣부르게 이종욱을 교체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이종욱이 빠지면서 좌익수를 보던 정수빈이 중견수로 이동하고, 김현수가 좌익수로 나서게 됩니다. 이후 정수빈은 조영훈의 타구를 잘 쫓아갔지만 결국 펜스에 부딪치며 놓쳐 추격점수를 허용하게 되었고 좌익수 김현수는 느린 걸음으로 김상수에게 결정적인 안타를 허용하게 됩니다.

과연 발빠른 정수빈이었다면 그런 행운의 안타를 허용했을까 생각해 본다면 결국 이종욱의 초반 교체는 결국 두산에게는 짙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김경문감독은 좀더 긴 호흡으로 이종욱을 끌고 가는 게 맞았다고 봅니다. 특히 이종욱은 플레이오프에서 강한 면을 보였던 선수이고, 공수주에서 모두 상대에게 큰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김현수와 이종욱이라면 이종욱을 쓰는게 맞는 거라고 봅니다.


언터쳐블 히메네스, 손가락 부상에 울다

두산의 불운은 최고의 선발투수 히메네스가 초반에 손가락 부상으로 마운드를 내려가며 시작됩니다. 2차전에서도 그랬고, 5차전에서도 역시 삼성 타자들은 히메네스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히메네스가 손가락 부상이 없었다면 삼성의 대역전승은 아마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큰 경기에는 실력보다는 '운'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최소 6이닝 이상을 책임져야 할 히메네스가 초반에 급작스럽게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결국 두산의 불펜이 한템포 빨리 가동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임태훈이 체력적 한계에 봉착하며 박석민에게 통한의 끝내기 내야안타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폭주기관차 이영욱의 무리한 베이스러닝

어찌보면 삼성은 좀더 손쉽게 경기를 끝낼 수도 있었습니다. 6회말 무사 1루에 강명구를 둔 상황. 전진수비를 펼치던 두산 수비진이 화들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영욱이 친 타구가 좌익수 김현수 머리 위로 넘어가는 큰 타구를 날린 겁니다. 발빠른 강명구가 홈으로 들어와 동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제는 역전을 노릴 만한 상황이 온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영욱은 무리하게 3루를 노리다 횡사하고 맙니다. 팀이 연장 승부끝에 이겼기에 망정이지 만약 삼성이 졌다면 이 플레이 하나는 두고두고 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뻔 했습니다. 무사 상황에서 결코 무리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이영욱이 3루를 노린 것은 비단 이영욱 뿐만 아니라 3루 주루코치인 류중일 코치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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