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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사회인야구단 탐방 - 화이트제이스

by 푸른가람 2007.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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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을 달리는 사나이들

높푸른 가을하늘에 불어오는 바람마저 상쾌한 일요일 아침. 달콤한 늦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힘찬 함성으로 일요일을 달리는 사나이들이 있다. 대구지역 사회인야구계의 명문구단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화이트제이스 선수들이 바로 그들이다. 벌써 5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지만 늘 6년전 그날, 화이트제이스(White Jays)라는 팀명을 가슴에 새긴 유니폼을 정성스레 챙겨입고 첫 경기에 임하던 때의 열정과 겸손함으로 경기에 임한다. 화이트제이스가 야구실력 뿐만 아니라 야구계에서 모범적인 팀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2000년 영남일보사회인야구대회 서라벌리그 정규시즌 우승을 비롯, 98년 첫 리그참가 이후 매년 상위권의 성적을 거뒀지만 연고팀인 삼성을 꼭빼닮아서인지 포스트시즌에서는 매번 우승 일보직전에서 분루를 삼켰다. 그래서인지 올해 지휘봉을 잡은 강열석 감독의 우승에 대한 욕심은 그 어느해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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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까치, 날아오르다

사회인야구단 화이트제이스는 PC통신 천리안을 그 뿌리로 하고 있다. 1997년 '야구에 미쳐' PC통신 천리안의 야구동호회에 모여든 대구경북지역의 삼성라이온즈 팬들이 온라인상의 만남을 통해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키워나가다 보고 즐기는 야구가 아닌, 함께모여 땀흘리며 야구의 참맛을 느껴보자며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그들이었다. 야구에 배가 고팠던 것이다.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그들은 자연스레 서로에게 끌렸고 스스로를 '흰까치 가족'이라고 부를 정도의 끈끈한 정과 유대의식은 이후 화이트제이스를 사회인야구의 명문팀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통신이라는 온라인상의 만남을 통해 팀이 결성되었기 때문에 팀이 운영또한 통신이 근간이 되었다. 팀의 모든 일정과 경기후기, 일상의 신변잡기들로 가득찬 팀 게시판은 늘 생기가 넘쳤고, 이후 인터넷이 보편화됨에 따라 화이트제이스도 천리안시대를 마감하고 홈페이지(
http://whitejays.giveu.net)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즐기는 야구, 하나되는 화이트제이스

화이트제이스의 모토인 "즐기는 야구! 하나되는 White Jays!"는 천리안 야구동호회내의 야구단 게시판을 통한 회원들의 의견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창단원년 팀을 맡았던 강기석 감독의 작품으로 화이트제이스 야구단이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내고 있다. '즐기는 야구'라는 개념정의를 두고 회원들간 많은 토론이 오가기도 했다. 아마츄어인 사회인야구라고 해도 엄연히 정규리그에서는 승리와 패배가 갈리고, 우승이라는 팀간의 경쟁과 개인타이틀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기는 야구'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회인야구계에도 승리에만 집착해 부정선수를 기용하고 아마츄어 정신을 저버리는 부정행위들이 간혹 눈에 띄는 것이 현실이다. 부끄러운 승리보다는 깨끗한 매너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재 팀의 근간을 이루는 대다수 회원들이 97년 팀창단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까닭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이트제이스만의 독특한 팀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001년 시즌부터 대구지역의 양대 사회인야구대회에 동시참가하는 것도 모든 선수들에게 보다 많은 경기출장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뜻


비온 후 땅이 굳어지듯이

수많은 사회인야구팀들이 명멸을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화이트제이스는 6년이라는 기간동안 흔들림없이 팀을 운영해 왔다. 무엇보다 회원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 포장된 도로위를 순탄하게 달려오던 화이트제이스 구단도 팀이 존폐의 기로에 설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 1999년 2월 서울 사자랑 야구단과의 삼성라이온즈 팬클럽 친선정기전을 치르기 위해 차량으로 서울로 이동하던 도중 경부고속도로에서 선수단이 타고가던 승합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 하지만 자신의 생존마저 장담하기 힘든 위기상황에서도 선수들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부둥켜안았고 기적적으로 탑승자 전원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큰 사고를 겪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회원들간의 자발적 참여와 끈끈한 정이 서로를 더욱 강하게 결속시키게 된 것이다.


홈런왕 이만수와 화이트제이스

화이트제이스의 팀소개서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운영진 가운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홈런왕 이만수가 화이트제이스 야구단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만수코치(현 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가 화이트제이스와 인연을 맺게 된 것 역시 PC통신 천리안 덕분이다. 당시 컴맹 수준이던 이만수코치가 천리안 야구동호회 대화방에서 화이트제이스 회원 몇몇과 대화를 나누게 된 후 이만수 코치가 야구단 연습이나 창단기념일 행사 및 친선정기전 등에 바쁜 가운데 찾아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만수코치 역시 화이트제이스 선수들에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지난 97년 시즌종료후 삼성구단은 이만수 선수에게 일방적인 은퇴를 강요했고, 이에 팬들은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게 된다. 삼성구단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구시내에서 반대집회 및 가두서명 등을 받기로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 집회신고까지 마치고 삼성구단과의 일전을 벌이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것. 결국 이 사건은 이만수코치 자신이 자비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일단락되었지만 이만수 코치는 두고두고 이 일을 잊지 못하고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이제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 사건의 주동자들도 화이트제이스 회원들이었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여우도 죽을때는 머리를 제 살던 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만큼 고향을 잊지 못하고 늘 맘속에 그리워 한다는 뜻일 것이다. 생활에 이끌려 팀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 화이트제이스는 늘 마음의 고향과 같은 존재다. 97년 6월, 그저 야구가 좋아 작열하는 한여름 햇살속에 흙먼지나는 운동장을 누볐던 그때의 열정과, 한여름 내리는 빗속에 치고 달리고 흙탕물에 몸을 날리던 그때의 순수함과 여유. 펑고 한번 연습배팅 한번 더 하기 위해 새벽마다 조기축구가 아닌 '조기야구'로 새벽을 열며 하루를 시작했던 그때의 잔잔한 흥분과 설레임도 이젠 추억속의 일이지만 오늘도 화이트제이스 선수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다짐하곤 한다. 하늘나라에서 만나서도 꼭 함께 야구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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