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이토 유키의 노래를 들어보곤 한다. 학력고사를 코앞에 둔 고3 시절에 사귄 친구 덕분에 80년대 일본의 최고 아이돌 중 한명인 그녀를 알게 됐고, 수시로 보내준 테이프를 통해 여러 곡들을 들어보게 됐다. 당시에는 금기시되었던 일본 문화를 우연찮게 접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긴 그 무렵이 경제는 물론,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도 일본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카이 노리코, 구토 시즈카, 나카야마 미호 등등. 당시만 해도 잘 나가던 여자 아이돌이 많았으나 유독 사이토 유키에게 끌렸었다. 세라복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청순한 느낌의 여가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군대 다녀 오고, 직장에 들어 와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서 까맣게 잊고 살았었는데 세상이 참 좋아져 유튜브에 들어오면 수십년 전 노래, 영상도 다시 볼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것처럼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국화꽃처럼 그녀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 청순한 이미지와 달리 몇 차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을 일으키긴 했지만 여전히 방송과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닐테니 그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저 오래된 사진 속 그녀와 그 시절의 목소리만을 기억하고 싶다.
어찌됐건 그녀는 내게 1990년 그 자체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지만 추억이 또렷이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파릇파릇한 고등학생 시절 다가올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며 함께 노래를 듣던 친구도 그립다. 어딘가에서 무탈히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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