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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1할 타자' 배영섭, 1번타자로 계속 써야 하나

by 푸른가람 201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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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3할대에 육박하는 타율(.294)과 100안타 33도루를 기록하며 삼성 공격을 이끌었던 배영섭의 등장은 초보 감독 류중일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시즌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던 배영섭의 2012년 시즌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었지만 출발부터 삐그덕거렸다.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를 기대했던 류중일 감독으로선 예기치 못했던 배영섭의 부진 탓에 시즌 운영에 큰 차질이 생겼다.

6월 13일 현재 배영섭의 시즌 타율은 1할대(.193)에 머물러 있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유일하게 멘도사 라인(Mendoza line) 아래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중일 감독은 배영섭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잠시 2군에 내려보낸 적은 있지만 이내 1군으로 불러 올렸고 '1번타자' 배영섭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배영섭의 부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시즌 말미에 당했던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되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도 있고,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뒤에 겪게 되는 '2년차 징크스'로 보는 야구인들도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부진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 보다는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며 그 시기는 언제쯤이냐 하는 것이다.

배영섭의 소속팀 삼성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선두 SK와 1.5게임차 3위를 달리고 있고 무더위가 시작된 6월 중순 이후부터는 가파르게 순위 상승을 계속하고 있다.이토록 중요한 시기에 1할 타자에게 계속 1번 타자의 중책을 맡기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다.


배영섭은 1번 타순에서 1할5푼9리의 낮은 타율을 기록했다. 16개의 볼넷을 얻어 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24번의 삼진을 당했다. 흥미로운 것은 1번 타선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출전한 7번 타선에서는 무려 4할의 고타율을 기록중이라는 점이다. 출루에 신경써야 할 1-2번 테이블 세터보다는 오히려 하위타선에 포진했을 때의 타율이 두배 이상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록이 전부는 아니지만 객관적인 '수치'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4월 한달을 1할8푼이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보낸 배영섭은 5월 들어 2할4푼1리의 월간 타율을 기록하며 잠깐 반등하는 조짐을 보이더니 6월(25일 현재)에는 1할6푼7리로 타율이 4월보다 더 떨어졌다. 일시적인 부진이 아니라는 얘기다. 1군 엔트리에 두고 꾸준히 1번 타자로 기용한다고 해서 류감독의 희망대로 빠른 시일 내에 기량이 회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25일 현재 규정타석을 채운 45명의 타자 가은데 배영섭 보다 타율이 낮은 선수는 8개 구단 통틀어 단 한명도 없다. 바로 윗 순위에 있는 한화 한상훈의 시즌 타율은 2할2푼4리다. 배영섭은 시즌 55경기에 출장해 타율은 1할9푼3리에 머물렀고, 35개의 안타와 29개의 사사구를 얻어내 출루율 또한 3할3리에 불과하다. 공격의 첨병 역할을 맡아줘야 할 리드 오프의 성적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기록이다. 12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도루 부문 12위에 올라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지만  1번 타자가 가져야 할 여러 덕목 가운데 배영섭은 빠른 발만 가진 셈이다.  

류중일 감독의 야구를 흔히 '믿음의 야구'라 부른다. 프렌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13년간 삼성에서 뛰었고 11년 동안의 코치 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선수들과 소통하는 형님 리더십이 형성됐다. 한 팀에서만 24년을 선수와 코치로 뛰다 감독에 선임되는 '복'을 누리는 야구인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믿음'과 '소통'은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삼성 야구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물론 '믿음'은 중요하다. 당장 한두 경기 부진하다고 해서 선발 명단에서 빼거나 타선에 자주 변화를 주는 감독들을 종종 보아 왔지만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선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선수 스스로 부진의 원인을 찾고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지난해 보여줬던 '나믿가믿'식의 대책 없는 믿음이라면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언제까지 주느냐 것이며 그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결국 감독의 몫이다. 물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신인왕의 영예를 누렸던 배영섭이 불과 몇달 사이에 무려 1할 이상 타율이 떨어진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수 개인의 문제이지만 타격 코치를 포함한 코칭스태프의 능력에도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기량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배영섭을 꾸준히 1번 타자에 기용하는 것은 감독의 아집이며, 보다 강력한 팀 전력을 꾸려야 할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대다수 삼성팬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올시즌 프로야구는 유독 신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화수분' 야구를 자랑하는 두산은 물론이고 7위에 쳐져 있는 KIA 역시 새로운 얼굴들이 팀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물론 신인급의 활약을 마냥 반길 것도 아니다. 그들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그만큼 기존 선수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찌됐건 그들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인상적인 활약으로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여기에 코칭스태프의 안목도 한몫 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가 2군에 제 아무리 많이 있다 할지라도 기량이 꽃필 수 있게 도와주고, 1군 무대에 불러올려 성장시켜 줄 지도자가 없는 팀의 발전은 정체될 수 밖에 없고, 미래는 암울하다.

올 시즌 삼성 엔트리에는 눈에 띄는 새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외야수 정형식이 있지만 주전이라기 보다는 아직은 백업 요원에 불과하다. 정형식의 시즌 타율은 2할5푼으로 배영섭에 뒤지지 않는다. 도루도 10개나 기록하고 있을만큼 발도 빠르고 외야 수비도 뛰어나지만 타석에 설 기회는 배영섭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2군에 있는 유망주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지난해 모상기, 김현곤 등이 깜짝 활약으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올시즌은 잠잠하다. 다른 구단에 못지 않은 '원석'들이 절차탁마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지금 상태라면 전혀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류중일 감독의 '믿음의 야구' 속에는 공정한 경쟁은 물론 그 믿음의 기준도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철밥통'이란 말이 나왔고 '삼무원'이란 비아냥이 나온 것이다.

물론 류중일 감독이 배영섭의 1번타자 기용을 고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배영섭을 대신할 1번 타자 후보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대안이 있다면 김상수, 박한이나 정형식 정도가 되겠지만 김상수의 1번타자 기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패했다. 김상수는 1번 타자로 출장했을 때 타율이 2할2푼9리로 9번 타자로 나섰을 때의 2할6푼8리보다 떨어진다.

박한이가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박한이는 실제로도 1번 타자로 출장했을 때 타율이 3할4푼8리로 2번 타자로 출장했을 때의 3할2푼5리보다 높다. 그러나 박한이는 류중일 감독의 평소 지론인 '강한 2번' 타자에 최적화된 선수인데다 도루 능력을 포함한 주루 플레이에서 리드 오프로서는 부족함이 많다. 정형식 역시 2할대 초반의 타율(.238)로는 감독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류중일 감독이 고를 수 있는 1번타자 카드는 많지 않아 보인다. 박한이와 김상수가 어렵다면 차라리 정형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물론 상대 선발투수의 유형에 따라 경기마다 1번 타선은 유동적일 수 있겠지만 배영섭에 대한 '짝사랑' 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해마다 오정복, 이영욱, 배영섭이라는 깜짝 스타를 배출한 삼성 외야 '화수분'의 2012년 시즌 주인공이 정형식이 되지 마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사실 배영섭은 1번 기용이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1군 무대에서 선발 출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 이 글은 마니아리포트( http://www.maniareport.com/openshop/myreport/new_news_view.php?idx=2070 )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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