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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이승엽의 삼성 복귀, 최형우에겐 독이 됐다?

by 푸른가람 201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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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국내 복귀는 2012년 시즌 삼성의 공격력을 한층 강화시켜 줄 호재임에 분명했다. 전성기 시절과 같은 연간 50개 이상의 홈런 생산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존재만으로도 삼성 타선의 무게감은 전과 달랐다. 최형우를 받쳐줄 만한  강타자의 부재로 골머리를 앓았던 류중일 감독의 고민이 손쉽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시즌 개막 이후 두달이 흐른 지금까지 이승엽은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엽은 6월 18일 현재 57경기에 출장, 타율 3할 4푼 5리로 타율 부문 4위, 77개의 안타로 최다안타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홈런(14개)과 타점(46개) 부문에서도 3위에 랭크되어 있는 등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 석자를 올리고 있다.

기록만으로 보자면 그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다. 류중일 감독의 신임을 받았던 듬직한 4번타자 최형우가 극도의 부진에 빠졌던 올시즌 초반에 이승엽마저 없었더라면 삼성의 팀 성적은 더욱 더 곤두박질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승엽이 돌아와도 자리가 없을 것"이라던 선동열 감독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물론 이승엽의 개인 기록 자체는 훌륭하다. 아무리 부진해도 3할 타율에 30홈런, 100타점 이상은 해줄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 그대로다. 하지만 이승엽이 중심타선에 포진함으로써 최형우와 박석민, 채태인 등의 주축 타자들의 공격력 향상에도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이승엽 효과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주목받았던 선수가 바로 최형우다. 최형우는 2011년 시즌 타율 3할4푼, 30홈런, 118타점을 올리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경찰청 제대 이후 친정팀 삼성에 다시 복귀한 최형우의 성장은 놀라웠다. 2008년 19홈런을 시작으로 매년 홈런 숫자를 늘여 나갔고 타격의 정교함까지 갖춘 매력적인 타자로 진화해 갔다.

그에게 2012년 시즌은 생애 최고의 활약이 보장된, '약속의 시즌'이 될 것임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여기에 국민타자 이승엽까지 가세했다. 양준혁의 은퇴 이후 홀로 삼성 타선을 이끌어야 했던 2011년 시즌에 비해 폭발적인 성적 향상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승엽 - 최형우 - 박석민으로 이어지는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 구축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삼성팬들로선 화려했던 삼성 공격야구의 봄을 기대해 봄직 했지만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중심타선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박석민은 타율 3할 1푼 6리, 13홈런과 46타점으로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최형우의 부진은 깊고도 길었다. 시범경기까지만 해도 연일 맹타를 휘두르던 최형우의 방망이는 공교롭게도 시즌 개막과 함께 차갑게 식어 버렸다.

4월 한달 동안 4번타자 최형우는 단 하나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한 채 1할 6푼 7리의 타율과 5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극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류중일 감독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스스로 타격감을 되찾아주리라는 희망 섞인 기대도, 타순 조정이라는 나름의 묘안도 큰 효과는 없었다. 2군행 이후 타격 페이스를 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3할 3푼 2리의 타율, 3홈런과 30타점으로는 팬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최형우의 부진을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이승엽 영입과 연관시키는 시선도 있었다. 최형우 자신은 단 한번도 이를 언급한 적이 없었지만 까닭모를 부진이 길어지면서 추측은 어느새 사실처럼 굳어져 갔다. 최형우에게 이승엽이라는 날개를 달아주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 대스타 이승엽의 존재가 최형우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겼다는 얘기다. 큰 소나무 아래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이치와 마찬가지라는 것.

 

어불성설이다. 최형우는 스스로의 힘으로 프로야구 최고 타자의 반열에 올랐다. 만약 그가 이승엽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 때문에 타격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최형우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다. 게다가 이승엽은 최형우의 경쟁 대상이 아니라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아야 할 존재다.

지난 2003년 삼성은 이승엽 - 마해영 - 양준혁으로 이어지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했었다. 가장 뛰어난 4번 타자 세 명을 한 팀에 모아 놓은 꼴이었다. 타격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각자의 자존심은 선의의 경쟁을 부추겨 팀 공격력에 큰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이승엽은  타율 3할 1리, 56홈런 144타점, 마해영은 타율 2할 9푼 1리, 38홈런 123타점, 양준혁은 타율 3할2푼9리, 33홈런 92타점을 기록, 클린업 트리오가 무려 127개의 홈런과 359타점을 쓸어 담았다. 2003년 당시 삼성이 기록한 팀 홈런이 213개 가운데 이들 세명이 절반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2003년 클린업 트리오와 같은 공격력을 꿈꾸기는 어렵겠지만 최형우가 제 자리만 찾아 준다면 최형우 - 이승엽 - 박석민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중심 타선을 통해 2012년형 삼성 라이온즈 공격 야구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엽 영입을 통한 시너지 효과의 열매는 최형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따먹을 수 있다. 실체가 없는 호사가들의 입방정에도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

* 이 글은 마니아리포트( http://www.maniareport.com/openshop/myreport/new_news_view.php?idx=2008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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