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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삼성 vs KIA 12차전 - 빨간 유니폼을 입었지만 KIA는 해태가 아니었다

by 푸른가람 201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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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묘미는 순간순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의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 선택 하나에 팀의 승패가 갈리고 간혹은 야구의 역사 자체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치열한 선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KIA가 프로야구 후반기 첫 경기로 광주에서 만난 오늘 경기 역시 그 '선택'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장원삼과 트레비스의 선발 대결은 경기 후반까지 팽팽하게 이어졌다. 한달 가까이나 선발승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던 삼성 선발 장원삼의 출발은 불안했다. 1, 2회에 제구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으며 난조 기미를 보여 류중일 감독의 애간장을 태웠다. 2회를 지났을 때 장원삼의 투구수는 벌써 50개 가까이에 이르고 있었다. 초반 위기를 단 2점으로 막아낸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하지만 3회 이후 장원삼은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변화구 보다는 빠른 공을 앞세워 자신감 있게 KIA 타자들과 정면 승부를 펼쳐 7회까지 단 한점의 추가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최강의 불펜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가장 많은 역전승을 거두고 있는 삼성으로선 장원삼이 올시즌 들어 가장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며 7이닝을 책임져 준 것이 큰 힘이 됐다. 경기 막판 타자들의 득점 지원까지 받은 장원삼은 7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감격적인 시즌 4승을 신고했다.

KIA 선발 트레비스 역시 깔끔한 피칭을 보였다. 삼성 타자들은 트레비스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고, 이대로 무기력하게 후반기 첫경기부터 1점차 패배를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 8회초에 또한번 큰 회오리 바람이 몰아쳤다. 트레비스가 마지막 고비 최형우를 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삼성으로선 KIA의 아킬레스건인 불펜진을 빨리 마운드로 끌어내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8회 2사까지 트레비스는 말 그대로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딱 그기까지였다. 2사후 4번타자 최형우에게 안타를 허용하자 KIA 조범현 감독이 마운드에 올랐다. 고통스런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투구수가 좀 많기는 했지만 여전히 트레비스의 공은 위력적이었다. 완투까지는 무리였을 지 몰라도 8회를 마무리할 정도의 스태미너도 충분했다. 이전 경기에서 불펜진이 승리를 날려먹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트레비스 역시 자신이 게임을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교체 보다는 한번 더 기회를 주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조범현 감독은 냉정했다.

최근 KIA 한기주가 호투를 펼쳤던 것이 오히려 조범현 감독의 총기를 흐린 꼴이 됐다. 조 감독은 한템포 빨리 한기주를 마운드에 올렸고 지난 삼성전에 그랬던 것처럼 완벽하게 타자들을 요리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한기주는 다시 예전의 한기주로 돌아가 있었다. 4안타를 정신차릴 새 없이 얻어맞으며 순식간에 4실점. 경기는 어느새 2:5로 역전되어 버렸다.


KIA는 8회말 제구가 잡히지 않은 정현욱을 공략하며 절호의 추격 기회를 맞는 듯 싶었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이범호의 무리한 베이스 러닝이 찬물을 끼얹었다. 3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무리해서 한 베이스를 더 가기 보다는 보다 많은 주자를 루에 모으는 편이 낫다는 것이 야구의 상식이긴 하지만, 그 순간 이범호의 눈에 뭔가가 단단히 씐 게 분명하다.

삼성은 9회말 최고의 마무리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고, 오승환은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며 KIA 세 타자를 가볍게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삼성으로선 여러모로 기분좋은 승리일 수 밖에 없다. 1위 라이벌 KIA와의 승차를 다시 1게임차로 줄인데다 어느새 오승환의 라이벌로까지 추켜세워지던 한기주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KIA 불펜를 약화시키는 데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윤성환과 김희걸의 선발 대결로 예고된 내일 경기마저 삼성이 잡는다면 후반기 순위싸움은 더욱 더 흥미진진해 질 것으로 보인다.


* 오늘 KIA는 검은색 하의, 빨간색 상의로 대표되는 해태 시절의 올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했다. 90년대 중반까지 그야말로 리그를 평정했던 그 공포스러운 해태의 유니폼은 하지만 더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태는 더 이상 빨간 유니폼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KIA는 KIA일 뿐, 유니폼 하나 바꿔 입었다고 해태의 영혼이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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