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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남이 장군의 전설이 흐르는 남이포와 선바위

by 푸른가람 2009.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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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자리잡고 있는 남이포와 선바위는 그 이름처럼 조선 전기의 명장이었던 남이(南怡) 장군과 연관이 있는 곳이다. 남이 장군은 조선의 3대 국왕 태종의 외증손으로 세조3년(1457년)에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며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 13년때 북관에서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했으며  28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까지 올랐다.

그칠 것이 없어 보였던 남이 장군은 어이없게도 간신 유자광의 무고로 그 재능과 기개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젊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여진 토벌과정에서 그가 읊었다고 전해지는 싯구가 문제가 되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 滿, , " 속의 '미평국(:나라를 평정하지 못함)'을 '미득국(:나라를 얻지 못함)'으로 조작해 모함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사나이 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느냐"며 대장부의 호기로운 기상을 자랑하던 글귀는 어느 순간 역모의 증거로 억울한 죽음을 이끌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시대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는 생기게 마련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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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포(南怡浦)는 비운의 주인공이었던 역사상의 실존 인물 남이 장군과 얽힌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남이포에 얽힌 설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조선 중종때 지금의 연당1리(옛날 백석리) 백석지 가에 지룡의 아들인 아룡과 자룡이 살고 있었다. 이들 형제는 어려서부터 지혜와 용맹이 뛰어났으나 역모를 품어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기세가 워낙 강해 감히 누구 하나 진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용맹이 넘치는 남이 장군을 보내 반란을 토벌토록 하였다. 남이 장군이 용마를 타고 하늘 높이 뛰어 올라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마침내 아룡과 자룡의 목을 베는데 성공했다. 남이 장군이 용마를 타고 내려오다 암벽에 칼로 자신의 초상을 새기니 이것이 지금의 남이포가 되었다.

바로 이 남이포에서 영양군의 주봉인 일월산에서 발원한 반변천과 서쪽에서 발원한 청계천의 물길이 합쳐진다. 그 주변에 영양군의 대표적 관광지인 선바위 관광지가 있다. 선바위 관광지에서 다리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산촌박물관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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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남이포 건너편 강변에는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절벽이 있는데 이곳을 선바위 또는 신선바위라 부른다. 이곳은 영양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할 만 하다. 두개의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고,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모습이 마치 그림같다.

전설 한가지 더 소개하자면 반란을 진압한 남이 장군이 주변의 지형을 살펴보니, 청계천의 물길을 돌려야만 다시는 역모를 꾀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칼을 들어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렸다고 한다. 그때 마지막으로 칼로 벤 자국이 바로 지금의 선바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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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 정상에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한다. 한여름 뙤약볕이 무서워 지레 포기하긴 했지만 다음에는 꼭 한번 올라보리라 다짐해본다. 분명 저 위에 올라서면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다.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허락되는 멋진 풍경이 분명 있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지날때면 언제나 그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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