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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442

사진으로 추억하는 '09년 여름날의 불영사 어느 노랫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담아보고 싶었다. 불영사를 향해 차를 달리는 도중 파랗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마가 끼었나? 늘 생각만 하다 모처럼 카메라 챙겨들고 나서려니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도와주지 않는 하늘이 야속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불영사의 매력은 역시 일주문을 지나 절에 이르는 호젓한 산길이 아닐까 한다. 산길이라고는 해도 경사가 가파른 것도 아니요, 누구나 쉬 10여분을 걷노라면 불영사 앞마당에 다다를 수 있다. 그냥 산길도 아니다. 바로 옆을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이 한여름의 무더운 공기를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매번 불영사를 찾아도 질리지 않는 것이 다 이것 때문인 것 같다. 늘 똑같은 모습인 듯 하면서도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2009. 12. 9.
한여름에 다시 찾은 봉정사 개인적으로 봉정사는 여러차례 찾을 기회가 많았다. 처음 들렀던 건 5,6년전쯤 겨울철 인근에서 열렸던 행사참석후였고, 이후에는 고즈넉하고 편안한 봉정사의 느낌이 좋아 몇번 더 들렀었다. 그때마다 카메라가 새로 생기고, 또 다른 카메라로 바꾸고 하곤 했지만 나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한결같다는 느낌이 든다. 구도나 색감의 차이는 조금씩 나겠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큰 변화가 없다. 개인마다 선호하는 구도가 있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매번 비슷한 사진만 찍다보니 발전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좀더 색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노력을 안하는 것은 아닌데, 결과물은 역시 신통찮다. 이날의 봉정사 방문에서 얻은 수확이 있다면 명옥대라는 곳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견이라고 하기에 쑥스러운 것이 명옥대가 이날.. 2009. 12. 9.
청송8경의 하나인 신성계곡, 그 위에 세워진 방호정 방호정은 경북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신성계곡에 있는 작은 정자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중기의 학자인 조준도가 낙동강 상류의 길안천 신성계곡 절벽위에 세었다 하는데, 조준도의 호를 따 방호정(方壺亭)으로 불린다. 조준도의 효성이 지극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광해군 11년(1619년)에 세웠으며,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그린다 하여 사친(思親), 풍수당(風水堂)으로 불렸다 한다. 방호정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고, 1984년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로 지정되었다. 방대강당 앞 뜰을 거니노라면 그 옛날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담장 너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의 붉은빛이 가을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빛나 보인다. 청송군 .. 2009. 11. 26.
저물어가는 늦가을볕을 느끼게 했던 청송 보광사 송소고택을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안내판을 따라 무심코 들어간 곳이 보광사다. 큰 길에서 차 한대가 드나들 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산으로 조금 들어가면 그곳에 보광사가 있다. 입구에 오래된 보호수가 한그루 서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사실 보광사라는 사찰 자체는 크게 볼 것이 없다. 인터넷에서 보광사를 검색해 보면 같은 이름의 사찰이 수도 없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청송의 보광사는 규모가 작아서인지 자료 자체도 적은 편이다. 보광(普光)이라는 이름이 좋은가 보다. 한자도 똑같은 이름의 사찰이 서울부터 시작해 전라도까지, 전국 구석구석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송소고택이 그렇듯 이곳 보광사도 청송심씨와 관련이 깊다. 수많은 정승, 왕비와 부마를 배출한 명문가문의 자취를 지금도 느낄 수 있다. 경.. 2009. 11. 15.
아흔아홉칸 옛집에서의 하룻밤, 청송 송소고택 아파트나 서양식 주택에 비해 살기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우리 전통가옥들이 요즘 사랑받고 있다. 고택체험이란 이름으로 평생 도시에만 살던 사람들이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방문만 열면 그대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꿈꾸고 있다. 최근 들어 이곳저곳에 숙박을 할 수 있는 고택들이 많이 늘었지만 휴가철이 아닌 비수기에도 예약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송소고택도 그 중 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조선 영조때의 만석지기였던 심처대의 7대손 심호택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심호택의 호를 따 지금은 송소고택으로 불린다. 이번에 송소고택, 보광사 등 청송의 여러곳을 유람하며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 청송심씨가 조선시대 굉장한 명문 사대부 집안이었다는 것이다. .. 2009. 11. 12.
주왕산에서 맛보는 늦가을의 정취 역시나 이번에도 너무 늦어버렸다. 제대로 된 주왕산의 단풍을 즐기려면 10월말, 늦어도 11월초를 넘겨서는 안될 것 같다. 늘 그렇듯 단풍이 절정을 이룰 무렵이면 주말이고 평일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행락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룰게 뻔하다. 매번 번잡함이 싫어 조금 이르거나, 혹은 조금 늦은 시기를 찾다보니 늘 아쉬움이 남는다. 어차피 둘 다를 얻을 수는 없으니, 하나를 잃는다 해서 너무 아쉬워할 일도 아닌듯 하다. 단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새벽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벌써 주왕산 입구는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온 산행객들로 붐빈다. 모처럼 안개 자욱한 주왕산의 고즈넉함을 나홀로 누려볼까 했던 기대는 언감생심이었나 보다. 대전사에서 한참을 머무르다보니 수백명의 넘는 산행객들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다들 서둘.. 2009. 11. 10.
알려지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김룡사 숲길 얼마전 오대산 월정산 전나무 숲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여러번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인만큼 숲길은 많은 인파로 붐볐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잘생긴 전나무들과, 숲이 선사하는 상쾌한 공기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역시나 번잡함일 것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상상할 때면 난 항상 새벽의 고즈넉함을 그려왔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숲이라기 보단 웬지 잘 정비된 산책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도 원래는 그랬을 것이다.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아는 사람만이 찾는 보물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고 인터넷과 신문, 방송을 타면서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을까. 몇달 뒤 김룡사 숲길을 홀로 걷게.. 2009. 10. 10.
불교의 거목들이 거쳐간 천년고찰 사불산 대승사(大乘寺)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이어가며 융성했으니 웬만한 사찰들이 천년을 훌쩍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일반인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작은 사찰들도 비록 규모는 작을 지 몰라도, 그 역사에 있어서는 모자람이 없다. 오늘 소개하려는 대승사도 자료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9년(587년)에 창건했다 하니 간단히 셈해 보아도 1,40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이땅의 민초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겠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문경시 산북면 사불산 자락에 위치해 있고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 사불산에서 아침저녁으로 만나 서로의 수행을 점검했다고 하고, 고려시대의 나옹선사도 이곳 대승사에서 출.. 2009. 9. 28.
영양의 유일한 국보, 봉감모전오층석탑 국보의 정의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로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된 문화재를 국보라 칭한다. 말 그대로 나라에서 가장 보배로운 물건이 국보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우리나라에는 단 309점만이 국보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안동이나 경주처럼 문화재가 지천으로 널린 곳도 있다. 하지만 그 넓디 넓은 관할구역에 국보 한점 없는 시, 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문화유산인 국보 한 점이 영양군에도 있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그 주인공은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에 있는 봉감모전오층석탑(국보 제187호)이다. 마을 이름이 '봉감'이어서 봉감이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모전이란 말은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모전석탑.. 2009. 8. 21.
남이 장군의 전설이 흐르는 남이포와 선바위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자리잡고 있는 남이포와 선바위는 그 이름처럼 조선 전기의 명장이었던 남이(南怡) 장군과 연관이 있는 곳이다. 남이 장군은 조선의 3대 국왕 태종의 외증손으로 세조3년(1457년)에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며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 13년때 북관에서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했으며 28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까지 올랐다. 그칠 것이 없어 보였던 남이 장군은 어이없게도 간신 유자광의 무고로 그 재능과 기개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젊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여진 토벌과정에서 그가 읊었다고 전해지는 싯구가 문제가 되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속의 '미평국(未平國:나라를 평정하지 못함)'을 '미득.. 2009. 8. 19.
상서로운 돌을 쌓아올린 한국의 3대 정원 영양 서석지(瑞石池) 서석지(瑞石池)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상서로운 돌로 만든 연못이란 뜻이다. 경북 영양군 입암면에 위치한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과 인조시대때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의 별장으로 전남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담양 소쇄원은 이전에 한번 가본적이 있는지라 한국의 3대정원이라는 말만 듣고 기대에 부풀어 이곳을 찾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이라면 꽤나 유명한 곳일텐데 왜 알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서석지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굳이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서석지가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 2009. 8. 8.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 청량사(淸凉寺) 청량사는 청량산 12봉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기슭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자리가 불교를 대표하는 꽃인 연꽃의 꽃술자리라고들 한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에 의해 중건된 천년고찰이다. 설명에 따르면 창건 당시만 해도 승당 등 무려 33개의 부속건물을 거느린 대사찰이었으며,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 울려퍼지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산 전체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했던 까닭에 청량산 일대에만 27개의 크고작은 암자가 있어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했을 정도였으나, 이후 숭유억불책을 썼던 조선시대 이후 쇠락을 거듭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웅진전만이 남아 있다. 청량사를 대표하는 법당 유리보전.. 2009.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