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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겨울의 끝자락에 다시 찾은 청암정과 닭실마을

by 푸른가람 201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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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봉화 닭실마을을 찾았던 것이 지난해 무더운 한여름날이었다. 그때 일이, 그때 그 느낌이 생생한 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덧없이 흘러 버렸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는 이소라의 노래처럼 몇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이곳은 여전했지만 나만 달라져 있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건 누가 만들어 놓은 이치인 것이기에 이리도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인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매섭던 겨울 추위도 어느덧 불어오는 봄의 훈풍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아직 마을 뒷산에 꽃이 붉고 노란 꽃이 만개하기엔 이르지만, 어느새 마을 앞 논에는 물이 가득 채워질 것이고 그 속에서 또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날 것이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내가 좋아하는 청암정의 모습을 볼 수 없을 뻔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내부 사정이라고 한다) 이 곳 청암정도 3월 1일 부터는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입구에 세워져 있다. 실제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되진 않았지만 그 독특한 형태며 물길로 둘러쌓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청암정을 한동안 감상할 수 없다니 애석한 일이다.







영남의 4대 명당이라는 닭실마을을 한바퀴 돌아 본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무언가 좋은 기를 한몸 가득 받아 돌아가고 싶어 자꾸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 푸르디 푸른 한여름의 녹음이 사라져 버린 무채색의 겨울 풍경은 애잔하다. 사라져 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듯 이 심심한 겨울의 무채색 덕분에 봄이면 다시 피어오를 화려한 빛깔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수녀님들 몇분이 청암정 구경을 오셨나 보다. 바람에 곱게 흩날리는 옷자락이 그분들의 고운 자태를 닮은 것 같다. 이곳에 홀로 서 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년 전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옛날 팔자좋은 한량들이 그랬던 것처럼 청암정에 올라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으며 소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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