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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함양 남계서원 - 화사한 배롱나무 꽃과 우람한 소나무의 조화

by 푸른가람 201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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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점 없는 무더위에 함양 땅을 찾았다. 남계서원을 찾기 위함이었다. 전에도 서원 근처에 들렀다 몇차례나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날을 잡은 것이 푹푹 찌는 날이었음은 누굴 탓하랴. 함양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한양 땅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낙동강 왼쪽에 안동이 있고, 오른쪽에 함양 땅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렇게 불렸다 한다.

퇴계 이황이 안동을 대표하는 학자라면, 함양 땅에는 정여창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그의 호는 일두인데 '한마리 좀'이라는 뜻이다. 스스로를 낮추려는 유학자의 풍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정여창은 조선조치 성리학의 거두였던 김종직의 문하에 있었던 탓에 화를 피하지 못했다. 무오사화때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후학들이 그의 학문과 인품을 추모해 서원을 세웠고, 후에 남계라는 사액을 받았다.

남계는 서원 근처를 흐르는 내의 이름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풍기 소수서원과 해주의 문헌서원과 더불어 가장 유래가 오래 된 서원 중 한 곳이다. 눈여겨볼 것은 조선 초기 서원 건축의 전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원 앞쪽에는 유생들이 수학하고 기거하는 강학 영역이 자리잡고 뒷편 높은 터에는 사당을 지어 제향 공간을 삼았다. 남계서원은 낮은 언덕에 석축을 쌓아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위엄을 갖췄다.

이채로운 것은 서원 안에 연못을 두 곳이나 조성했다는 점이다. 동재와 서재 앞에 각각 하나씩 연못을 파 연꽃을 심었다. 때마침 하얀 수련이 피어 퇴락한 서원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병산서원에도 만대루 누각을 오르기 전에 작은 연못 하나가 있긴 하지만 남계서원처럼 좌우에 정연하게 조성한 것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때마침 배롱나무 꽃이 붉게 피어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엄숙한 수행의 공간인 사찰이나 서원에 이처럼 화사한 꽃나무를 심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배롱나무 꽃만큼 풍경을 돋보이게 해주는 꽃도 흔치 않다. 멀리서보면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강렬하다. 사당에 오르는 가파른 언덕에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 꽃이 담장 밖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그 원형을 잃지 않은 덕분에 안동 병산서원 등과 함께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사당에 오르는 언덕에서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시원스럽다. 더위가 좀 물러가면 다시 찾아봐야겠다. 고풍스러운 2층 누각인 풍영루에 올라 옛 선인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는 것도 훌륭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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