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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맑고 깨끗한 바람 속 소쇄원에서 붉은 동백꽃을 탐하다

by 푸른가람 201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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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흔치 않은 곳이다.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설레고 언제든 시간이 나면 달려가고 싶어지는 그런 곳 말이다. 거리상으론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산책하듯 몇걸음만 움직이면 푸른 대숲을 이는 바람소리, 아담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꿈을 꾸듯 광풍각 마루의 온기를 손으로 느껴보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른 법이니 함부로 개인적인 느낌을 정답인 양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 3대 정원이라는 거창한 수식이 붙는 이 소쇄원을 소개함에 있어서는 더욱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크기와 규모를 중시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면 필시 실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공간이다. 남아 있는 건물도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와 애양단, 오곡문 같은 오래된 담장 뿐이다. 입구에 서면 한눈에 소쇄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소박하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일부로 들어감으로써 더 큰 공간을 온전히 누리고자 했던 원림 조성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 곳은 세상 그 어디보다 크고 깊은 공간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번이 몇번째 방문인 지 정확히 셈이 되지 않는다. 소쇄원을 목적지로 삼지 않았더라도 전라도 인근을 찾게 되는 때에는 여정을 두르게 된다한들 굳이 또 발걸음을 옮기데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지인들에게 이 좋은 곳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가도 한편으론 나만이 호젓하게 즐기고 싶다는 욕심에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여러 차례 왔으면서도 애양단과 오곡단 담장 아래 붉은 동백꽃이 피어있는 모습은 처음 보게 됐다. 이상하게도 동백꽃을 만나게 되면 항상 땅에 떨어져 있는 꽃에 눈길이 간다. 사람들의 발길에 으깨지고 바람과 비에 흐트러진 꽃은 더욱 붉게 타오르는 듯 하다. 그 강렬한 느낌에 이끌려 동백나무 근처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소쇄니 광풍, 제월이란 이름을 되뇌일때마다 참 멋진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든 사물이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의미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것에 꼭 들어맞는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비로소 내게로 와 한떨기 아름다운 '꽃'이 되고,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되는 법이다.






언제나처럼 소쇄원의 오래된 담장과 이끼 낀 기와를 찬찬히 살펴보며 카메라에 담아 본다. 내가 찍은 소쇄원 사진은 늘 비슷하다. 새로운 시선, 새로운 느낌을 담아보고 싶지만 여정을 정리하며 느끼게 되는 것은 결국 매번 나의 시선과 발길은 정해진 코스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 반복이 결코 지겹거나 따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번 소쇄원 여행은 하얀 눈이 소복히 내리는 날이길 매번 다짐해 본다. 인연이 닿는다면 내 생애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러지 못한다 한들 어떤가. 이른 봄 기운에 푸른 신록으로 차오르는 날에도, 한여름 우거진 녹음 속에서도, 울긋불긋 예쁜 단풍으로 물드는 날에도 난 광풍각에 앉아 온통 하얀 눈세상 속 푸른 대빛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있을 테니까.





소쇄원 소개 

소쇄원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의 있는 조선시대 정원이다. 1530년(중종 28) 소쇄 양산보가 스승이었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를 입자 시골로 은거하러 내려가 지은 별서정원으로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 1983년 7월 20일에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08년 5월 2일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때 소실되었으나 복원하여 현재 광풍각과 제월당, 대봉대 등 3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이곳은 물이 흘러 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배치하여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정원으로 광풍각에는 영조 31년(1755년) 당시 소쇄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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