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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기품을 엿볼 수 있는 경주 교동 최씨고택

by 푸른가람 201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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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그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의 여섯가지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최근에 TV CF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경주 살 때부터 경주 교리 최부자집 얘기는 참 많이도 들었었지요. 문화재로도 지정된 이곳의 정식 명칭은 경주 교동 최씨고택입니다. 원래 경주시 내남면에 살다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는 약 170년 정도가 흘렀다고 하네요.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지냈던 부호이자, 또한 이 지역의 명문가였습니다. 만석꾼이야 각 지방마다 한두 집안씩은 꼭 있는 법이겠지만 이 최부자집은 좀 독특하지요. 요즘들어 얘기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수백년전부터 실천해 온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정의니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면서도 나쁜 짓은 도맡아 하고 있는 요즘 가진 자들에게는 귀감이 될 만한 집안입니다.





부지가 약 2천평인데 후원이 약 1만평에 달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아흔아홉칸의 대저택이었지만 화재를 겪어 불타 없어진 건물이 많아 지금은 안채, 문간채, 고방, 사당, 뒤주가 남아 있습니다. 사랑채는 불타 없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했는데 아무래도 고풍찬연한 기존 건물과는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자였기도 하지만 최씨 집안의 마지막 만석꾼이었던 최준은 독립운동에 매진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쏟아 부었고, 이 사실이 일제에 적발돼 모진 고문을 겪기도 했다고 하네요.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최준 선생은 해방 이후에는 모든 재산을 현재의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교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업습니다.




부자가 되기는 쉬워도 그 재산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석꾼의 재산을 12대에 걸쳐 지켜온 것도 큰 일이지만, 육훈이라는 집안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과 나누며 지켜왔다는 그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 최부자와 같은 부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몇해전 동호회 사람들과 이곳을 찾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사진이나 찍어볼 생각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경주시에서는 이 최씨고택과 주변을 한옥마을로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시간이 조금 흐르면 경주에서도 전주나 서울 북촌한옥마을 부럽지 않은 전통가옥촌을 들러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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