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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천개의 불상과 석탑으로 가득찬 화순 운주사

by 푸른가람 201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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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제게 그리 익숙한 사찰은 아니었습니다. 천불천탑의 사찰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 꽤나 유명한 절인 거 같은데 불과 몇달 전에 운주사라는 절이 전라도 화순땅에 있다는 걸 알았을 정도니까요. 이번에도 주로 전라북도 일대의 사찰을 주로 돌아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운주사는 코스에 넣어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 가 봤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습니다. 운주사를 제게 추천해준 분에게 정말 맘속으로 몇번이나 감사를 드렸는지 모르겠네요. 절이 크고 웅장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주변 풍광이 수려하거나 단풍이 아주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라서 그랬던 것도 물론 아니구요. 운주사는 제가 지금까지 다녀본 사찰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절 입구에서 표를 끊어 들어가면 일주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산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보통은 울창한 산림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풍성함을 느끼게 하는 숲길을 따라 걸어가게 되는데 그다지 높아 보이지도 않는 산은 거의 민둥산입니다.



산불이라도 났던걸까 하는 의아심을 가지고 걸음을 옮겨 봅니다. 조금 들어가면 높다랗게 솟아있는 수많은 석탑이 나타납니다. 이건 석가탑이나 다보탑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의 사찰 경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제된 조형미의 석탑들이 전혀 아닙니다. 그냥 누군가가 건성건성 쌓아올린 듯 보입니다. 그래도 높이는 엄청나게 높더군요.





석탑이 다가 아닙니다. 바로 곁에는 암각화로 그려지거나 바위로 조각되어진 수많은 석불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석탑과 마찬가지로 이 석불들도 전혀 세련된 모습이 아닙니다. 분명 전문적인 조각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련되진 못하되, 그 표정들이나 생김새가 아주 정겹습니다.









천불천탑의 사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가 봅니다. 과거에는 정말로 천개의 석탑과 천개의 불상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1942년까지 이 절에는 213개의 석불과 30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석불 70개와 12개의 석탑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돌아다니면서 본 숫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 같은데 좀 의아스럽네요.





경내로 들어서면 깔끔하고 단아한 모습의 대웅전과 명부전 등 부속 건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되 건물의 크기 만으로 헤아리기 힘든 많은 것들을 품어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금가고 쪼개진 석탑이 세월의 무게를 절로 느끼게 해 주네요. 참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절입니다.








대웅전 뒷편으로 올라가면 마치 잘 정돈된 조각공원같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해 전에 큰 산불이 난 게 맞나 봅니다. 그래서 주변의 산들에는 이렇다할 큰 나무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산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다니면 여기에도 수많은 전설을 안고 있는 석불과 탑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특이한 것이 바로 와불입니다. 부부와불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는데 이 와불은 운주사의 천불천탑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운주사를 창건한 도선 스님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파악하여 배의 중간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지역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해서 천개의 석탑과 불상을 하룻밤 사이에 만들었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이 부부와불은 길이가 무려 12m, 너비가 10m에 달하는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뒤바뀌고 1,000년간 태평성대가 이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도 다 미륵신앙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옛날 힘들었던 삶을 미래의 미륵불에 의지하며 지탱했던 민초들이 떠오르네요.






운주사는 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를 볼 때는 전혀 몰랐는데 그때 화면을 다시 살펴보니 이 와불도 등장했네요. 알고 봤더라면 좀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분명 운주사를 보고 돌아가는 마음 한켠에는 큰 무언가를 담고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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