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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지리산 둘레길

by 푸른가람 201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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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한 채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본 게 올 봄쯤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서야 글을 올리게 됐다. 아마도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던 둘레길 걷기라서 글 쓰는 것도 많이 늦어진 게 아닐까 싶다. 제주도 올레길과 더불어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 아닐까.



말로만 듣던 둘레길을 걸어보자고 몇명이 의기투합을 했다. 이런자런 자료들을 찾아보니 둘레길은 모두 다섯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초행인 우리는 어차피 산행이 목적이 아닌만큼 제일 평이하고 무난한 제2코스를 걷기로 결정했다. 제2코스는 남원시 운봉읍과 인월면을 잇는 9.4km 짜리 코스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지리산길 안내센터에 차를 대고는 부푼 기대를 안고 지리산 둘레길로 향했다. 마을을 나서니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한참 산길을 걸어 올라가다보니 산 속에 흥부골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새로 조성하는 통나무집도 몇채 보인다. 아마도 둘레길이 열리고 나서 늘어나는 숙박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봄날이지만 잠시 걷다보니 이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휴양림 내에 있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잠시 땀을 식혔다. 불어오는 봄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휴양림을 지나면 잘 닦여진 임도를 만나게 된다. 구불구불 굽이치는 길을 따라 걸으며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둘레길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노라면 옥계저수지를 옆으로 끼고 산을 내려오게 된다.



이때부터는 말 그래도 평지다. 인월면까지는 이렇다할 산길을 만날 일이 없다. 작은 마을을 따라, 옆으로 펼쳐진 시원스런 들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걸으면 된다. 때마침 작은 개울옆 제방길을 따라 탐스럽게 피어난 벚꽃이 봄날의 운치를 더 해준다. 군데군데 마을이 있고 작은 정자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또한 운봉-인월간의 제2코스에는 황산대첩비, 송흥록생가, 서림공원, 운봉향교, 국악의 성지 등이 있어 지루함을 덜어 준다. 말이 9.4km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농로를 따라 제방길을 따라 걷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이런 시골길을 자주 걸어보지 못한 도시 사람들에게야 참 신기한 길이겠지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같은 사람에겐 그다지 관심끌만한 풍경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주는 느낌은 참 평화롭다. 파란 보리밭과 모내기 준비에 분주한 논 사이로 갑자기 고라니 한마리가 뛰어 다닌다. 이런 건 돈주고도 쉽사리 보기 힘든 장면일 거다. 또한 제2코스의 람천을 따라서는 천연기념물 수달과 원앙도 서식하고 있다고 하니 다니면서 동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제2코스는 길이 평탄하고 또한 넓어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19km로 8시간이 소요되는 제3코스 인월-금계 코스에 비하면 4시간 정도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로 짧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요 들을 따라 난 길을 걷다보니 풍경이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도 둘레길 코스 선택시 고려해봐야 할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서라고 할까, 나쁘게 말하면 '냄비근성'이라고도 표현되긴 하지만 금방 불붙었다 이내 식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남이 장에 가면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속담도 이를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신문이나 방송,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이와 같은 일시적인 '쏠림'현상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지리산 둘레길도 마찬가지다. 둘레길 자체가 새로 만들어진 길이라기 보다는 이전부터 주민들의 삶과 함께 했던 길,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이 전체적인 둘레길로 정비되어 재탄생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길들은 국립공원의 경우에서 산 정상을 향한 등산객들의 수요를 산 아랫 부분으로 분배함으로써 자연에 주는 부담과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일정 부분 있다고 보여진다.



어쨋든 누구나 산 꼭대기로 기여코 올라가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도시 생활 속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네 고향의 정겨움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껴볼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지금까지 지리산 둘레길은 그 역할을 잘 해왔었지만 얼마전에 인기 프로그램인 '1박2일'이 다녀간 이후 이곳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1박2일이 다녀갔던 대부분의 여행지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방송 이후 갑자기 늘어난 방문객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둘레길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 조차 관광객의 흥청거림 속에 사라져버린 요즘의 둘레길은 "차라리 길을 없애달라"는 주민의 하소연에서 그 안타까운 현실을 느끼게 한다.



물론 물밀듯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상대하는 일부 주민들의 의식도 문제라고 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아직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여행, 관광이라고 하면 버스에서 술먹고 춤판 벌이고, 대낮에 고성방가를 하고 놀아야만 '오늘 하루 제대로 놀았다'는 생각을 하는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지리산 둘레길과 같은 갈등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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