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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서 - 황경신 한뼘노트 "생각이 나서"란 말은 참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왜 전화했어? 혹은 어쩐 일이야? 라는 물음에는 빙긋 웃으며 "그냥...생각이 나서..." 이런 대답이 제격이다. 얘기하려면 정확한 이유를 대지 못할 것도 없지만, 또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사이 같아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질 것 같다. 라는 따뜻한 제목의 에세이집을 펴낸 황경신이라는 이름에서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아주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PAPER라는 잡지를 사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의 앞뒤 어디에선가 분명 그녀의 이름을 봤던 것 같다. 황경신의 글에서는 여전히 PAPER 냄새가 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하는 얘기니까 아예 향기가 난다고 해 볼까? 요즘 이런 류의 책들은 흔하다. 사진과 글이 적당.. 2015. 8. 21.
조선 임금 잔혹사 - 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 심도 있는 역사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카피라이터 출신의 작가가 쓴 책에 어울리는 적당한 깊이와 또 적당한 재미가 곁들어진 책이란 생각이 든다. 를 지은 조민기의 이력이 이채롭다. 그는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후 영화사를 거쳐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중 우연한 기회로 칼럼니스트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딱딱하지 않아서 읽기가 편하다. 지나간 역사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소 식상하게 읽혀질 수도 있지만 지루하지 않게 재미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한 덕분이다. 라는 다소 섬뜩한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조선의 임금 자리에 올랐던 아홉 명의 군주와, 임금이 되지 못했던 세 명의 세자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다지 새로운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독자들의.. 2015. 8. 19.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저명 작가는 여행기를 어떻게 쓸까? 하는 궁금증에 주저없이 이 책을 골랐다.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 이 책의 제목이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의 제목을 고른 것은 아니겠지만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제목 선택인 것 같다. 책 표지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진이 이채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녹이 슨 고철덩어리가 된 전차(혹은 장갑차?) 위에 호기롭게 올라 서 있는 그가 입은 청바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초원의 푸른 빛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나이는 들었으되, 아직 여전히 청춘이구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하긴, 이 책에 담긴 글들이 대부분 1990년대 초, 중반에 쓰여진 것들이니 젊은 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 시절 그의 감성.. 2015. 8. 10.
중용 인간의 맛, 21세기 인류문명의 새로운 가치 방향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오래 전에도 중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던 1993년쯤이었을 것이다. 마침 5분 대기조라서 짬짬이 책을 볼 시간이 있었던 덕분에 눈에 띄는 책들은 가리지 않고 섭렵했었다. 덕분에 동양의 고전이자, 쉽게 읽기 힘든 중용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중용을 만났다. 이번에는 도올 김용옥의 해석으로 중용 전편을 원문과 함께 읽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을 펴고, 또 덮고를 반복한 것이 1, 2년은 족히 지난 느낌이다. EBS에서 방송되었던 을 차근차근 보았더라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난 을 어렵사리 읽었지만 한편 읽.. 2015. 7. 12.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느낌을 남기려 한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은 성찰과 사색의 우주가 이 책에 담겨 있기에, 감히 나의 부족한 지식과 지혜로 풀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라는 제목 만큼이나 무겁고 중요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신영복 교수가 성공회대학에서 진행했던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의 1부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라는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앞 부분은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이름난 동양의 고전들을 총망라하고 있고, 뒷 부분은 20여년의 옥살이를 통해 깨닫게 된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 가고 있다. 신영.. 2015. 7. 6.
내 옆에 있는 사람 - 이병률 여행산문집 꽤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 같다. 이병률이라는 사람을 안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의 글과 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시인이자 방송작가로 알려져 있는 이병률의 산문집 두 권을 읽었을 뿐,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다지 많지 않은 데 말이다. 그의 책에는 여전히 서문도 없고, 에필로그도 없다. 그 흔한 차례도 없고, 페이지도 매겨지 있지 않다. 한편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마음데 드는 구절을 만나면 친구에게 "몇 페이지 몇번째 줄,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 줄 수도 있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고, 오랜 작업 뒤에는 어떤 마음이었는 지 독자들에게 그 속내를 털어놓을 법도 한 데, 그는 한결같이 .. 2015. 7. 5.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단언컨대 좋은 책이다. 대학교수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회학자가 쓴 책이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서는 아니다. 제목 부터가 심상찮다.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가 지은 은 말그대로 하루하루 세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한 직시이자, 한편 따뜻한 격려이기도 하다. 세상물정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이나 상황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일상에서 세상물정이란 말을 흔히 쓰곤 하지만, 보통은 상대에 대한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세상살이에 약아빠지지 못한, 순진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물정을 잘 안다 할 수 있을까. 세상살이에 닳아빠진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정작 세상이 돌아.. 2015. 7. 2.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먹고 살기 어렵다는 보편적 아우성이 출판계만 비껴갈 리 없다. '출판계의 위기' 이야기는 이미 진부한 것이 되어 버렸다. 조만간 종이 책은 사라지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전자책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우세하다.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새 책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아주 소수의 애독자들은 지갑을 열어 아낌없이 책을 산다. 윤성근이 지은 란 책은 이렇듯 없는 살림에도 책을 사고,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서재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껏 국내외 저명인사의 그럴듯한 서재 구경은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여러 번 해봤지만, 그리 눈에 띌 것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재를 꾸미고, 그 곳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놓았는 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다. 이 책에는 스물 세.. 2015. 6. 23.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소설 읽기를 멈춘 지가 오래인 지라 김영하라는 이름난 소설가의 작품을 여지껏 한 권도 읽어보질 못했다. 열 편이 넘는 소설을 펴낸 그는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계에서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데다 큰 대중적 성공까지 이루었다. 여러 주목할 만한 강연과 대담, 그리고 지상파TV 출연까지, 어찌보면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영하의 산문집 는 소설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김영하에게서 듣는 그의 삶, 문학,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화천의 전방지역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도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한국 문학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과정에 드라마틱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 2015. 6. 14.
작은 집 큰 생각 -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의 책을 또 읽게 됐다. 얼마 전 읽었던 라는 책이 참 마음에 들어서다. 최갑수와 이병률의 그랬듯, 이른바 한번 '필이 꽃히면' 그 작가의 책은 가리지 않고 읽게 되는 것 같다. 지금껏 그 선택에 후회해 본 적은 없으니, 사람과 사람의 좋은 만남이란 것이 비단 얼굴을 마주 하고, 얘기를 나눠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임형남+노은주 라는 표현이 참 재밌으면서도 정겹다. 이렇듯 서로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존중하며, 때로는 의지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일일텐데, 아마도 이들 부부는 천생연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서로의 마음이 같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끼리 시너지 효과를 거둔, 아주 긍정적인 사례로 보아도 좋겠다. 이 책의 초.. 2015. 5. 31.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만약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다시 태어난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건축가로서의 삶이다. 물론 현세의 나의 능력과 재주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란 것도 잘 안다. 그러기에 빼어난 건축을 자유자재껏 만들어 내는 뛰어난 건축가들과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이 된 명품 건축들을 보며 경탄을 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러 오래된 건축들을 보러 다니곤 한다.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야 건축이 지닌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지 기약은 없다. 하지만 끊없이 이어지는 발걸음을 통해 예기치 못했던 놀라움과 경탄은 물론 치유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으니 마치 더듬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곤충마냥 깜깜이로 떠나는 답사 여행이 고난의 길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처럼 문외한이.. 2015. 5. 25.
투명사회 -투명성의 전체주의적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 '투명사회'는 내가 읽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두번째 책이다. '피로사회'라는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하지만, 피로사회라는 제목에서 그가 던져주고 있는 화두가 단적으로 드러났듯, 투명사회 역시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단적인 특징 중 하나를 그는 '투명'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일견 생각해 보면 '피로'라는 단어에 비해 '투명'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음침한 뒷골목의 어느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 밝고 오픈된 공간으로 옮겨진 듯한 기분이다. 기존의 비밀스런 결정과정과 거래들에서 많은 비리가 양산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던 과거의 관행들이 어쩌면 우리를 '투명사회'의 강박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 2015.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