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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땅161

수덕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고속도로에서 몇 km를 밟고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렀는데도 수덕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만 대충 챙겨들고 대웅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의 수덕여관부터 수덕사 경내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지만 이날은 그저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만나뵙는 것으로 만족할 요량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찍은 사진들은 도무지 별 감흥이 없다.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수덕사 대웅전의 단아함은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좋다. 날씨도 쌀쌀하고 시간대도 그래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모처럼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이 산사의 적막함을 일깨워줬다. 한참이나 먼 거리를 한바퀴 돌아 애시당초 행선지에 없었던 .. 2012. 3. 4.
펑지에 자리잡은 돈암서원에서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다 논산, 계룡이라는 고을에서는 사계 김장생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모양이다. 사계 고택 두계 은농재를 지나 논산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돈암서원 역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의 후학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호남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그 명맥을 유지한 서원이기도 하다. 사실 돈암서원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 외에도 그의 아들인 김집, 송준길과 송시열의 위패를 사당에 봉안하고 있는 노론의 대표적인 서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연산지역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광산 김씨 가문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주는 유물이 아닐까 싶다. 대구, 경북지역의 수많은 서원들을 .. 2012. 3. 3.
논산 개태사에서 친근한 느낌의 부처님을 만나다 충남 논산시 연호면 천호리 천하산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이 있는 절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936년 황산군(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왕건이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 덕분이라 여기고 이 곳에 개태사를 지었다고 한다. 여느 사찰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국도 변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해 있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산사의 고요함을 맛보기는 어렵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수고를 덜 수는 있을망정 절에 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터에 비해 당우들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 조금 휑한 느낌도 받게 된다. 법상종 사찰이라는 설명도 있고 조계종 소속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주문과 극락전에 걸.. 2012. 3. 1.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고택, 두계 은농재 애시당초 행선지에 올려져 있던 곳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이었지만 가는 길에 들러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은농재였다. 은농재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이다. 정식 명칭은 사계고택이라 함이 옳겠다. 은농재는 사계고택의 별당으로 이 고택에는 은농재 말고도 대문채, 행랑채, 안채와 가묘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사계고택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고택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주위로 높은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그 아래 유서깊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사계고택이라는 힘있는 필체의 현판이 붙어 있는 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나.. 2012. 2. 29.
봉정사의 숨겨진 보물 영산암 일상의 번잡함을 잊으려 절을 자주 찾곤 한다. 그 중에서도 안동 봉정사는 내가 자주 찾는 단골(?) 사찰 중 한 곳이다. 매번 봉정사를 찾을 때마다 단 한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이곳도 이번에는 내가 때를 잘못 맟춘 것 같다. 하필이면 성지순례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수십명의 사람들이 봉정사를 분주히 거닐고 있었다. 산사에 오면 바람에 몸을 내맡기며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고요한 독경소리, 목탁 소리만이 혼탁한 속세의 소리를 잠재워 줘서 참 좋았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소리에 이 좋은 소리들이 묻혀 버리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 아래에도, 지난해 국보로 승격된 대웅전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봉정사를 찾는 사람들 중에 모르고 스쳐 지나는 곳이 한 곳 있다. 봉정사.. 2012. 2. 28.
따뜻하고 평안했던 '다각적 추론의 집' 명재고택 건축가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마지막에 명재 윤증고택이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 이른 봄에 충남 일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적지 중의 한곳에도 이 오래된 옛집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을 뵙고 오느라 지체했던 탓에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다음으로 미뤄야 했었던 그날의 아쉬움을 1년이 지난 후에야 풀 수 있었다. 명재고택을 찾았던 날은 마치 봄날 같았다. 한낮 햇볕의 너무나 따뜻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 하다. 홀로 걷고 있어도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햇볕을 받아 온기가 감도는 마루에 앉아 오래된 나무의 감촉을 손으로 매만지며 그 따뜻함을 만끽하던 찰나의 행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오래되고 말없는 것들.. 2012. 2. 26.
시(詩)로 지어진 건축, 회재 이언적의 옛집 독락당(獨樂堂)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에 독락당이 맨 처음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경주 옥산서원에 갔다 잠시 들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근처에 오래된 고택이 있으니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지 독락당이라는 건물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맛이 없습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잠시 스쳐지나 왔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물론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에서 미리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독락당의 깊은 곳 구석구석까지, 혹은 독락당을 만들었던 회재 선생의 철학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락당은 24세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2012. 1. 8.
새해 첫날, 고운사에서 절하다 새해 첫날에 의성 고운사를 찾았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운사를 찾아 왔지만 이날처럼 고운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해 첫날이라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절하러 오신 분들이 저 말고도 또 많았던 가 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절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 고즈넉한 산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욕심은 또 여전합니다. 사람들과 차량의 번잡함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고운사는 모처럼 조계종 본사에 어울리는 분주함을 모처럼 되찾은 것 같아서 저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하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한 것일테니까요. 절을 자주 찾아다니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무엇이 가로막았.. 2012. 1. 3.
예천 초간정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구나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하였던가요. 맞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데 사람들의 모습만 달라졌습니다. 2년전 여름날 처음 초간정을 찾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초간정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제게 이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절로 읊어질 것 같은 예천 초간정 : http://kangks72.tistory.com/758 2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새벽 일찍 회룡포에서의 일출을 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절정을 달리고 있는 계절답게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탁류 속에 가려져 있던 개울도 지금은 맑은 물빛을 되찾았습니다.. 2011. 12. 25.
솔숲 너머 푸른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 울진 월송정 월송정의 모습은 늘 변함이 없어 단조롭기까지 하다. 영화 속 월송정의 모습은 꽤나 낭만적이고 운치있어 보였는데 정자 자체는 크게 감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무언가 규모로 압도하는 맛이 있다거나,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무게감이 있는 것도 이나라서 올 때마다 조금 심심함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월송정이라는 정자 자체보다는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소나무숲, 혹은 마치 월송정의 앞마당인 것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과 푸른 동해 바다에서 이 곳을 찾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인근의 이름난 해수욕장과 달리 이곳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금도 철책이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작은 문을 통해 철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열려있는 해수욕장이나 해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금단의 구.. 2011. 12. 23.
비에 갇혀있던 운문사에서 주인이 되다 여행을 다닌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흐린 날은 흐린대로, 비가 오는 날은 또 그런대로 맛과 정취가 있는 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란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왕의 여행길이 화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욕심입니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 한장 건질 것 같은 기대조차 들지 않은 그런 날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그런 날도 있는 법입니다. 무작정 일을 접고 운문사로 떠났던 어느 여름날도 그러했습니다.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요, 운문사에 푹 빠져 있는 것도 아닌데 정처없는 떠남의 행선지가 운문사였던 것도 묘한 일입니다. 인연이라 부릅니다.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은 그저 인.. 2011. 12. 18.
열린 문을 따라 이끌리듯 들어갔던 경산 난포고택 다녀온 지 한참 지난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느낌이 생생히 떠오르는 듯 합니다. 이런 것이 사진의 매력이자, 한장의 사진이 주는 고마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별다른 감흥없이 찾았던 곳이었는데, 그것마저 몇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또 하나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 또한 세월이 숙성되면서 주는 인생의 맛인 듯 합니다. 이날은 무작정 운문사를 향해 떠났던 날이었습니다. 하늘은 온통 찌푸려 금새 비라도 쏟아질 태세였지요. 아니나 다를까 운문사에 들러 익숙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니 어김없이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더군요. 준비성 없이 우산도 챙기지 않고 떠났던 혼자만의 출사는 예기치 못했던 고요한 산사에서의 고립을 낳았습니다. 당시엔 당혹스러웠지만 그 고립의 시간이 주.. 2011.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