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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땅161

유채꽃의 샛노란 물결 속 경주의 봄날을 거닐다 우리나라에 경주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단 신라 천년의 고도라는 식상한 수식이 아니더라도 경주에 들어서면 뭔가 느낌부터가 다른 것 같다. 불어오는 바람 내음이 다르고 공기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익숙한 누군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언제나 경주를 생각하면 노곤한 졸음이 오는 지도 모르겠다. 그 좋은 도시에 이십여년 이상을 살았으면서도 정작 그 곳에 살 때는 그걸 몰랐다. 늘 마주치는 문화재들은 지루했고 법률로 변화를 억압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의 삶은 답답함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답답했던 도시가 이제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경주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 2012. 4. 29.
늘 즐겁고 설레는 운문사 찾아가는 길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곳일지라도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다. 청도 호거산 운문사 역시도 내게는 그런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 중의 하나다. 대구에서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운문사를 찾게 되곤 하는데 언제든 운문사를 향해 가는 길은 즐겁고 설레는 순간의 연속이다. 운문사를 향해 가는 길은 꼭 이 운문댐을 지나야 한다. 물론 석남사 쪽에서 넘어온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고개마루를 넘으며 드넓은 운문호를 바라보노라면 시원스런 풍광에만 눈길이 갔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 때문이다. 깊고 푸른 물 속에 잠긴 땅이 한때는 이곳에 살던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는 것은 사실 고향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내게는 직접적으로 와닿는 느낌은 아니다.. 2012. 4. 20.
세찬 물소리 속에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대원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좋은 풍경에 마음을 뺏겨 점심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 한적한 시골에 이렇다할 식당도 없어 할 수 없이 대원사까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오는 수 밖에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식당에서 먹었던 산채 비빔밥의 맛깔스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든다. 이제서야 청아한 계곡의 물소리와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산자락에 걸린 흰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큰 도로를 지나 대원사 까지는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와야 한다. 다행히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차로 다니기에도 무리가 없지만 이왕이면 시원스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대원사를 떠올리면 먼저 이 시원스런 계곡이 .. 2012. 4. 16.
지리산 계곡 내원사에서 찰라무상의 나를 내려 놓다 뭔가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것은 아니다. 내원사란 절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양산에 있는 천성산 내원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산청 내원사에 대한 글들은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절이고,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절도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기어코 이 작은 절을 찾아 가보려 했던 것인 지도 모르겠다. 큰 도로를 빠져 나와 좁다란 산길을 따라 내원사로 가는 데 바로 옆의 계곡이 온통 흙탕물이다. 지금은 큰물이 질 시기도 아닌데 맑은 물이 흘러야 할 계곡이 이 모양일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절로 향하는데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공사가 한창이다. 펜션을 새로 짓기도 하고 야영장을 손보기도 하고 본격적인 행락철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손길들이 분주하다. 어지러운 공사의 현장은 내원.. 2012. 4. 14.
남명의 마음으로 덕천서원에서 덧없이 흐르는 구름을 좇다 가보고 싶었던 산천재를 둘러 보았으니 이제 덕천서원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덕천서원은 산천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덕천강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수령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나그네를 반겨 준다. 늦가을이면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들 덕천서원의 풍경을 잠시 상상해 본다. 전국에 수많은 서원들이 산재해 있지만 관리상의 문제로 대부분 닫혀 있는 곳들이 많다. 멀리서 발품을 팔아 찾아갔는데 굳게 닫혀 있는 문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곤 했었는데 찾는 이가 많지는 않을텐데 이렇게 늘 열려 있어서 반갑고도 고맙다. 물론 남명 유적지로 산청군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해 본다. 솟을대문인 시정문을 들어서면 덕천서원의 아담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첫 인상에 참 마음에 .. 2012. 4. 12.
지리산을 마당에 앉힌 집 산천재 따뜻한 봄바람 불어오는 3월의 어느날에 무작정 산청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다 산천재 때문이었다. 지난해 읽었던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 덕분에 다녀온 곳이 여럿 되는데 지리산 자락 아래 산청 고을에 자리잡고 있는 남명 조식의 옛집 산천재 역시 그 여정의 한 곳이다. 책 표지에 담긴 산천재의 모습은 따사로웠다. 몇채 되지 않는 건물과 너른 마당을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주는 충만함은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산천재를 향한 짝사랑은 몇달이 지나서야 겨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때마침 5백년도 훨씬 넘은 유명한 남명매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려 멀리서 찾아온 빈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실제 눈으로 본 산천재는 전체적으로 좀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 사진 속의 산천재와.. 2012. 4. 9.
철학의 정원 도산서당에서 안동호를 바라보다 도산서원은 꽤나 자주 가는 곳이긴 하지만 이번은 좀 남다른 느낌이었다. 그 전에는 그저 오래된 건물이 주는 여유로움과 도산서원 주변의 풍광에 이끌렸다면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라는 책에 소개된 도산서원을 접하고 나서는 건축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읽어내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봄을 느끼기에 아직은 쌀쌀한 날씨다. 우수, 경칩이 다 지났다지만 도산서원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안동호도 꽁꽁 얼어 붙어있는 데다 이날은 진눈깨비까지 날려 겨울이 한창인 느낌이다. 퇴계 선생이 그토록 아꼈다는 절우당의 매화는 아직 꽃을 틔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화에 물 주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이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퇴계 선생의 향기를 좇아 도산서원 구석을 걸어 본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의 저자 함성호는 도산서.. 2012. 3. 19.
일흔일곱에 지은 우암의 공부방, 남간정사 충청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남간정사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우암 송시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진으로 본 남간정사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치 봄날같았던 햇살 덕분이었는지 다행히도 남간정사의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 있다. 바위를 흐르는 계류 위에 놓여져 있는 남간정사는 언제가 될 지 모를 첫 건축의 모델이 될 수 있을만큼 매력적이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남간정사와 기국정이 사이좋게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연못이 공간의 여백을 채워준다. 그리고 그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이것은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봉래산을 상징하는 우리 전통 조경의 정형이기도 하고, 집이 들어설 자리의 풍광을 중요시하는 기호지방 성리학자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담장을 따라 한바.. 2012. 3. 12.
비암사에 아니오신듯 다녀가소서 비암사는 크지도 않고,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찰도 아니다. 그래서 지난해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녔을 때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행선지에서 뺐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이었는 지는 지난해 봄에 찾았던 개심사, 그리고 마침내 지난 겨울에 찾았던 비암사를 직접 다녀오고서 깊게 깨우치게 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절이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비암사는 규모가 작다. 극락보전, 대웅전, 명부전, 산신각 등 당우들이 단촐하니 사각형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구석구석 어디를 다녀봐도 깔금하게 잘 정돈된 모습에서 보살님들의 부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드는 절이라서 참 좋다. 비암사를 찾았던 그날의 날씨도 그러했다. 2월 중순이었지만 그날은 마치 시간이 한달이나.. 2012. 3. 10.
우주 만물의 배꼽(omphalos)을 꿈꾼 우암 송시열의 팔괘정 사계 김장생이 말년을 보낸 임이정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나즈막한 산자락에 팔괘정이라는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팔괘정은 우암 송시열이 그의 스승이었던 김장생과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이정 바로 지척에 지은 정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팔괘정은 임이정과 무척 많이 닮아 있다. 흡사 보면 쌍둥이처럼 보일 정도로 구조적으로 흡사하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형태도 그렇고, 두 칸에 마루를 놓고 나머지 한 칸을 벽으로 막아 온돌을 들인 구조도 임이정과 같다. 어차피 이번 여행이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 소개되어 있는 옛집들을 찾아 나선 여행이니만큼 이번에도 건축가 함성호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조선의 건축은 사실 똑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조선의 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 2012. 3. 9.
호쾌한 전망의 임이정에서 현실주의자의 삶을 엿보다 갑작스런 충청도 여행의 목적지는 함성호가 지은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 소개되어 있는 충남지역의 옛집들에 대한 끌림 때문이었다. 지난해 엇갈리는 일정 때문에 명재 고택을 찾아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컸던 차에 논산 인근에 몰려 있는 수많은 옛집들을 한꺼번에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수많은 행선지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여기 임이정이다. 임이정은 조선 예학의 종장이라 칭송받는 사계 김장생이 그의 나이 79세에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강경에 지은 집이다. 임이정의 그 유명한 황산벌의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바로 옆을 흐르는 금강과 더불어 시원스런 전망이 으뜸이다. 임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데 원래는 황산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사진에도 잘 드러나지만.. 2012. 3. 8.
푸른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상쾌했던 죽림서원 임이정을 향해 가는 길에 죽림서원이 있다. 죽림서원과 임이정, 팔괘정은 모두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고 마치 한 셋트의 유적공원처럼 잘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죽림서원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아담한 모습이었다. 이 역시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건물 안을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죽림서원은 인조 4년(1626년)에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생들이 세운 사당이었던 황산사가 그 기원으로 전해진다. 이후 현종 6년(1665년)에 '죽림'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이때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이후에는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까지 추가 배향하게 되었다. .. 2012.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