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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삼성을 생각한다'

by 푸른가람 2011.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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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0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사건이 그것이었지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삼성 특검까지 이어졌지만 사건의 결말은 예상보다 싱거웠습니다. 그로부터 몇년의 시간이 흘러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용철 변호사가 책을 통해서 그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때 생각이 납니다. 사무실에서도 인간 김용철과 변호사 김용철, 그리고 삼성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었습니다. 의견은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거대 재벌의 비리를 파헤쳐 부패의 고리를 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진심이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고, 반면에 은혜를 원수로 갚은 파렴치한, 조직의 배신자라는 거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책을 사서 다 읽는데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보통 책을 잡으면 빠르면 하루이틀, 아무리 늦어도 한달을 넘기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유달리 오래 걸렸습니다. 물론 이 책이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긴 하지만 고도의 전문분야를 써서 읽기 어렵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뭐라 그럴까요. 이 책은 그 한꼭지 한꼭지를 읽을 때마다 숨고르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김용철 변호사의 말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삼성의 영향력이 국가 전체에 미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의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 이후 삼성은 대국민 선언을 통해 변화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사이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이 있었고 경영 일선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삼성으로선 그룹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이 거북하고 불쾌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기업의 오너가 본분인 기업가 정신을 망각하고 권력을 좇게 될 때 어떤 비극을 맞게 될 지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말미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남긴 글이 꽤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갖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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