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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시가 내게로 왔다 - 김용택이 사랑하는 시

by 푸른가람 201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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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하나도 숨김없이 시로 드러내놓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김용택 시인은 서정주의 시 '上理果園'을 읽은 감회를 써내려가면서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읽는다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자기의 마음을 한치의 어김도 없이, 조금의 가감없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압축되고 정제된 단어를 통해 詩라는 형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시인의 '창작의 고통'은 더 할말 필요도 없을 터.

'시가 내게로 왔다'는 김용택 시인이 문학을 공부하면서 읽었던 시인의 시 들 중에서 오래동안 남아 빛나고 있는 시들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펴낸 책이다. 박용래 시인의 '겨울밤'으로부터 서정주의 '上理果園''에 이르기까지 총 마흔아홉편의 시가 담겨 있다. 그 모두가 "시인 김용택이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한 시들"인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때부터 대학의 교양강의에 이르기까지 국어 시간을 통해 수많은 시들을 감상해 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감상이라기 보다는 시험을 위해 분석하고 그 속에서 정형화된 답을 도출해 내온 셈이다. 시어에 담긴 시인의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내게 시는 여전히 어렵다. 예전보다 시를 좀더 자주 접하려 노력하고, 시를 읽으며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좀더 자주하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이런 시인의 시가 좋다고 하는데, 읽어봐도 왜 좋은지 모르겠으니 문학적 감성이라는 것이 벼락치기 공부하듯 한다고 해서 저절로 샘솟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시를 읽어보려 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며,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시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며 우리를 위로하는 시인에게서 잠시 숨고를 여유를 얻는다. 산에 가도, 바다에 가도, 님하고 가면 좋다는 시인의 마음은 보통의 평범한 우리를 쏙 빼닮았다. 우리도 시인이 될 수 있고, 우리의 말이 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소설은 한번 읽으면 다시 읽기가 어렵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맛이 새롭게 생겨난다. 시를 읽는 사람의 '지금'의 감정과 밀접하게 작용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의 감동은 멀리서 느리게 오나,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래서 시다."

김용택 시인이 에필로그에 남긴 말인데 참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그런 것 같다. 좋은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은 천둥벼락처럼 내 가슴을 때리기 보다는 하얀 천에 아름다운 빛깔이 스며들 듯 느리게 오지만, 쉬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진한 향기로 남아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하고, 슬며시 웃음짓게 하기도 한다.

시에 문외한이었던 내게 시를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 준 이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시를 읽고 있자면 어느새 나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쏟아지는 강변을 거닐기도 하고, 운주사 와불 옆에 팔베고 누워 조용히 엄마를 부르기도 하고, 산사의 적막을 깨는 풍경소리에 담긴 애끓는 그리움을 좇기도 한다. 그때가 바로 시가 내게로 온 바로 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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