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는 김룡사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오산이었다. 몇해 전에 처음 김룡사라는 멋진 절을 처음 가보고 나서는 뭔가에 이끌리듯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이 곳을 여러번 찾았었다. 김룡사 숲길도 무척 마음에 들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일주문에 이르는 전나무숲의 싱그러움이 인상적이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31본산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조계종 제8교규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그리 큰 절이 아니어서인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언제 와도 사람 소리가 많이 나지 않는 절이라서 더욱 좋았다. 이 호젓한 산사를 홀로 즐기는 호사를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사진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김룡사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놀랍게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석탑과 석불을 절 뒷편에서 보게 된 것이다. 매번 올 때마다 비슷한 길을 따라 걸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통상 절 앞마당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풍수지리상 누운 소의 형상인 운불산의 맥을 보전하기 위해 그리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솜씨 좋은 석공의 솜씨가 아닌 토속적인 느낌에서 마치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다. 다보탑이나 석가탑이 정제되고 우아한 예술미의 정수를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잘 나서 사뭇 귀족적이라면 이 곳에 탑과 부처는 곁에 있는 우리 이웃이 없는 솜씨지만 정성들여 만든 것 같아 애착이 간다.
이 꽃 이름을 모르겠다. 온통 붉은 꽃잎과 샛노란 꽃술이 동백꽃과 많이 닮았지만 동백나무는 아닌 듯 싶다. 학문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나는 이 꽃을 그저 동백이라고 불러본다. 간만에 찾아온 손님을 반겨주려고 때맞춰 피어나 주었으리라 혼자 생각해 본다.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보다 몇배는 더 이뻐 보인다.
김룡사에서 이날처럼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무슨 행사가 있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관광버스 몇대에 나눠타고 온 불자들로 모처럼 조용하던 산사가 활기를 띄는 모습이었다. 몰랐던 사실인데 이 김룡사에도 성철 스님께서 머무르며 대중들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아마도 이날 김룡사를 찾았던 사람들도 큰 스승이었던 성철 스님의 흔적을 찾아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절의 유래나 사적기를 보면 이름난 큰스님이 절에 머무렀다는 것을 큰 자랑처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름난 절에서 고승대덕의 자취를 찾아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테지만 머리를 숙이고 절하며 나를 내려놓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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