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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442

여유로움 속에 오래된 전통과 호흡할 수 있는 고령 개실마을 유행이란 것이 비단 패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고택, 전통마을과 같은 오래된 우리 것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또한 어느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아마도 지난 수십년간 고도성장의 그늘 아래 현기증 날 정도로 정신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사람들은 한 템포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 지도 모르겠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개실마을 또한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전통 문화마을 가운데 한 곳이다. 원래 개실마을은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이란 뜻의 개화실(開花室)에서 음이 변해 개실이 되었다 한다. 개실마을의 80% 정도가 전통 한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강동마을과 같이 이름난 전통 마을.. 2013. 4. 24.
절이 흥해야 나라가 흥한다는 영취산 아래 흥국사 사진만으로 봤을 땐 여수 시가지 어느 곳의 나트막한 산 속에 들어앉아 있는 절일 거라 생각했었다. 흥국사는 몇해 전부터 가봐야지 생각했던 곳인데 이런저런 핑계로 이번에서야 찾아 나서게 됐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 서 있는 여수산업단지를 지나야 한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말로만 듣던 영취산 아래에 흥국사가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온 산이 온통 붉은 진달래로 장관을 이룬다는 영취산이 바로 이곳이었다니. 때마침 이날 영취산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절 입구에서부터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고, 일주문 앞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어서 기대했던 산사의 고요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시간이 좀 일러서인지 다행히 찾는 이가 많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활짝 피어난 봄꽃을 찾아 다니며 봄을 만끽한다지.. 2013. 4. 21.
희고 붉은 연꽃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완주 송광사 송광사를 다녀 온 지도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났다. 송광사 하면 흔히들 순천 조계산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전북 완주의 종남산 산자락 아래에도 이에 못지 않는 훌륭한 사찰이 있으니 그 이름 또한 순천의 그것과 한자까지 똑같은 송광사(松廣寺)다. 아마도 송광이란 이름이 좋아 이렇듯 여러 절에서 이름으로 쓰고 있는 듯 하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완주 송광사의 원래 이름은 백련사였으며 신라 경문왕 때 도의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 이 절의 규모는 무척 커서 일주문이 사찰 경내로부터 3km 밖에 세워졌을 정도였으며 무려 800동의 당우와 600여명의 승려가 수행을 했다고 하니 능히 그 위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송광사는 아담하니 위압스럽지 않아 좋다. 처음 .. 2013. 2. 28.
겨울의 한가운데, 병산서원에 잠시 머물다 상상하거나 기대헀던 모습은 아니었다. 하얀 눈 속에 포근하게 담겨진 병산서원을 마음 속으로 그려봤었지만 며칠 계속된 따뜻한 날씨에 쌓였던 하얀 눈밭은 어느새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가려져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것이 비단 눈 속 풍경만은 아니겠지만 눈이 녹아내릴 때처럼 추한 모습도 또 흔치 않다. 앞서 걷는 연인들의 투닥거림에 신경이 쓰인다. 질퍽한 길을 걷기 싫어하는 마음이 걸음걸이에서부터 느껴지는 아가씨의 끊임없는 불평이 남자 친구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하다. 이런 좋은 곳에 놀러 와서 싸우고 가면 안되지. 오지랖 넓은 참견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들어간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눈 맞추며 사랑을 재잘거릴 그들이 아니던가. 여느 때처럼 복례문을 지나 만대루 밑에 다다른다. .. 2013. 2. 6.
조선시대 불교 건축의 단아함을 엿볼 수 있는 수정사 대웅전 진보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수정사 대웅전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분명 안내판엔 "수정사 대웅전 150m"라고 씌어 있지만 150m는, 아니 1,500m를 가도 절은 보이지 않는다. 모르고 지나쳐 왔나 싶어 몇번을 되돌아 나오는 불필요한 수고 끝에 산길을 수km 더 달려 작은 절집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절이 바로 수정사요, 초라하기까지 한 절집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각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정사 대웅전이다. 기록에 따르면 수정사는 고려 공민왕 때의 큰 스님인 나옹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중수되었고,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1982년에 보수한 것이다. 대웅전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조선시대 건축의 단아.. 2012. 11. 20.
한옥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한국관광의 별' 송소고택 모처럼 다시 찾은 송소고택은 여전히 정겨운 느낌이었다. 아궁이마다 장작이 불타며 희뿌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오래전 유년기의 기억을 되돌려 주는 듯 했다. 겨울날 저녁 해가 질 무렵이면 아궁이에 앉아 군불을 지피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단잠을 자고 나면 피곤이 다 풀릴 것 같은 느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송소고택은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토요일이면 또 많은 사람들이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 먼길을 마다 않고 달려올 것이다. 얼마전 '한국 관광의 별' 숙박부문에 송소고택이 선정되면서 이곳을 찾는 이는 더 늘어나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고택 체험도 쉽지 않아졌다. 송소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청송에는 여러 볼거리가 많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주왕산은 물론.. 2012. 11. 18.
천년의 세월 너머 감은사지의 옛 풍경 속을 거닐어 보다 분명 오래되고, 낡고, 허물어져 가는 곳인데도 이곳에 오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져서 돌아간다. 여러 차례 복원을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금이 가 있고, 천여년의 비바람 속에 으스러진 자국이 남아 있는 두 개의 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힘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볼 거리가 많은 곳은 결코 아니다. 그리 넓지 않은 절터에는 휑하니 두개의 탑만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다. 맞은편에는 산과 들과 강이 어우려져 넓디 넓은 바다로 이어진다. 세찬 바닷바람과 맞닥뜨려야 하는 겨울에는 잠시도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춥다.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줄 것도 없는 이 곳이 왜 이리도 끌리는 것일까. 이 곳에 오면 늘 뒤짐을 지고 여유롭게 몇번을 거닐어 보곤 한다. 이.. 2012. 9. 3.
화왕산의 넉넉한 품 속에 있는 아름다운 절, 관룡사 몇 해 전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곳, 화왕산 아래 자리잡은 유서깊은 절 관룡사에 다녀 왔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 관룡사를 찾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계절은 가을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내게 관룡사라는 절은 두가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마치 병풍처럼 절 뒷편을 두르고 있는 구룡산 병풍바위의 강건한 기운과 원음각에서 땀을 식히던 서늘한 바람의 감촉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관룡사는 신라시대에는 8대 사찰로 이 절에서 원효대사가 중국 승려 1,000여명을 상대로 화엄경을 설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룡사라는 이름은 창건 당시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붙여졌는데, 일주문을 대신하는 나즈막한 석문이 찾는 이를 가장 먼저 맞아준다. 과거의 영화에 비해 지금 절은 그리 크지 않다. 남아 .. 2012. 9. 2.
'나무 사잇길' 따라 천년고찰 석남사를 거닐다 깊은 산중에 있는 작은 사찰 쯤으로 생각하고 석남사를 찾았다. 첫 느낌은 조금 생소했다. 일주문 앞으로 도로가 지나고 절 입구에 있는 식당은 속세의 허기를 채워주기에는 적당할 지 몰라도 절집이라면 응당 고요한 산사의 한적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마땅찮은 풍경이었다. 그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덕분인지 때이른 무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숲길이 있다. '나무 사잇길'로 이름 지어진 이 길은 올해 초 울주군에서 예산을 들여 새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공사 과정에서의 수목 훼손 논란 등으로 한때 시끄러웠었는데 지금은 잘 해결되었는지 모르겠다. 날씨 탓인지 녹음이 더욱 무겁고 짙게 느껴진다. 한여름에 걸어도 상쾌한 기.. 2012. 7. 14.
외로운 구름이 흘러가는 절, 의성 고운사 한 시간여를 달려 고운사에 당도한 그 날은 파란 하늘 빛에 떠가는 흰구름이 좋은 날이었다. 전날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난 뒤 하늘은 깨끗했고, 바람은 상쾌했다. 후텁지근한 장마철 한가운데 이런 좋은 날씨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 카메라를 챙겨 들고 떠날 곳을 궁리하다 도착한 곳은 또 고운사였다. 고운사는 내게 참 익숙한 절이다. 몇해 전 처음 고운사를 찾았을 때의 느낌처럼 여전히 고운 절이란 생각이 든다. 절에 이르는 걷기 좋은 숲길도 좋고, 조계종 본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입장료를 받지 않는 넉넉한 인심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고운사가 좋은 이유를 든다면 절 입구에서번잡한 상가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번 카메라를 들고 고운사를 둘러보는 행로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2012. 7. 9.
사진 찍기에 좋다는 경산 반곡지를 느린 걸음으로 걷다 모처럼 평일 오후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어딜 가볼까 잠깐 고민하다 말로만 듣던 반곡지를 둘러 보기로 마음 먹었다. 경산 반곡지는 이미 사진찍는 이들 사이에선 '사진 찍기 좋은 곳' 혹은 '경산의 무릉도원'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명소다. 사진으로 많이 봤던 곳이었지만 실제 느낌은 어떨까 그 전부터 많이 궁금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반곡지의 오래된 버드나무 아래 그늘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즐기는 일행들이 여럿 있었다. 손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이내 도착해서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제 각각의 감상을 풀어놓고 있었다. 반곡지에서 청송 주산지의 신비로운 풍경을 떠올리는 이도 물론 있었다. 반곡지는 그리 넓지 않은 저수지다. 역시 첫 시선은 반.. 2012. 6. 30.
산중에 깊숙히 숨어 있는 산사, 각화사를 찾아서 각화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산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산중에 깊이 숨어있는 각화사를 찾아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고 올랐다. 도중에 과수원도 만나고 인적 드문 산 속에 홀로 있는 집들도 만났다. 아침에 눈 떠서 깊은 밤에 잠들 때까지 이런 풍경을 단 한번도 볼 수 없는 일상의 삶에서 비로소 벗어났음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 마침내 각화사에 이르렀다. 각화사 입구의 푸른 숲이 인상적이었다. 전날의 숙취 때문인지 절 구경보다는 그냥 어느 그늘 시원한 곳에 자리를 깔고 낮잠이나 한숨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5월이라고는 해도 낮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이른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한 그런 날이었다. 평지가 없는 산자락에 절이 자리잡다.. 2012.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