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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겨울의 한가운데, 병산서원에 잠시 머물다 본문

풍경을 그리다

겨울의 한가운데, 병산서원에 잠시 머물다

푸른가람 2013.02.06 22:58

상상하거나 기대헀던 모습은 아니었다. 하얀 눈 속에 포근하게 담겨진 병산서원을 마음 속으로 그려봤었지만 며칠 계속된 따뜻한 날씨에 쌓였던 하얀 눈밭은 어느새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가려져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것이 비단 눈 속 풍경만은 아니겠지만 눈이 녹아내릴 때처럼 추한 모습도 또 흔치 않다.



앞서 걷는 연인들의 투닥거림에 신경이 쓰인다. 질퍽한 길을 걷기 싫어하는 마음이 걸음걸이에서부터 느껴지는 아가씨의 끊임없는 불평이 남자 친구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하다. 이런 좋은 곳에 놀러 와서 싸우고 가면 안되지. 오지랖 넓은 참견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들어간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눈 맞추며 사랑을 재잘거릴 그들이 아니던가.





여느 때처럼 복례문을 지나 만대루 밑에 다다른다. 지난 여름 온통 푸른 병산서원에 붉디붉은 물감을 점점이 뿌려주던 배롱나무가 잎들을 떨구고 서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영원하지 않기에 귀한 것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즐길 자격이 주어지는 법이다. 지금은 파릇파릇 새로운 기운이 돋아날 봄을 기다리며 모진 추위를 견뎌야 할 때다.






병산서원의 풍경은 여전하다. 계절의 순환 속에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속내는 변함이 없다. 만대루 넓은 누마루에 앉아 도도한 낙동강의 흐름 속에 제 시간을 놓아버리는 호강을 누릴 수 없음이 안타깝다. 이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만대루를 바라보며 중요한 무언가를 빼앗겨 버린 상실감에 잠긴다.



목조 건물에는 사람의 온기가 더해져야먄 그 생명이 오래가는 법이라고 하는데 언제부터 만대루는 그저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는 박물관 속 유물처럼 변해버린 느낌이다. 만대루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낙동강이 손에 닿을 듯 더욱 가까와진다. 그 순간 만대루는 낙동강에 띄워진 한 척의 돛단배에 다름 아니다.



겨울 풍경은 어쩔 수 없이 스산하다. 하지만 눈을 만나면 겨울 풍경은 전혀 다른 옷을 입은 여인처럼 변신한다. 병산서원 앞 넓은 낙동강 가의 백사장에는 아직 하얀 겨울이 한창이다. 사람들은 흰 눈밭을 걷고 뛰고 구르며 제 나름의 흔적을 남긴다. 언젠가 돌아올 봄과 함께 그 흔적들은 사라지겠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 그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병산서원이 수백년 세월 속에 그렇게 흘러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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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 낙동강12경(부용경)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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