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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나무 사잇길' 따라 천년고찰 석남사를 거닐다

by 푸른가람 201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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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중에 있는 작은 사찰 쯤으로 생각하고 석남사를 찾았다. 첫 느낌은 조금 생소했다. 일주문 앞으로 도로가 지나고 절 입구에 있는 식당은 속세의 허기를 채워주기에는 적당할 지 몰라도 절집이라면 응당 고요한 산사의 한적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마땅찮은 풍경이었다.




그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덕분인지 때이른 무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숲길이 있다. '나무 사잇길'로 이름 지어진 이 길은 올해 초 울주군에서 예산을 들여 새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공사 과정에서의 수목 훼손 논란 등으로 한때 시끄러웠었는데 지금은 잘 해결되었는지 모르겠다.




날씨 탓인지 녹음이 더욱 무겁고 짙게 느껴진다. 한여름에 걸어도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잘 만들어진 걷기 좋은 길이다. 그래서인지 석남사 계곡은 예로부터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숲길 뿐만 아니라 계곡 곳곳이 더위를 피해 온 인파로 넘쳐날 것이다.





새소리 물소리에 정신이 팔려 잠시 걷는 사이 어느새 저만치 절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 앞 계곡은 그동안의 가뭄 때문인지 물이 많지가 않다. 여러 단으로 쌓아 올린 석축 너머 여러 채의 당우들이 보인다. 그 사이 특이한 모습이 눈에 띈다. 석축 사이의 큰 구멍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난 나무가 이채롭다. 분명 나무 한그루를 살리기 위해 저런 모양으로 석축을 만들었을 게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의 생명도 소중하니 함부로 살생하지 말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라 생각하니 비로소 절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걸어 올 때는 몰랐는데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주위 풍경을 보니 꽤나 깊은 산중에 절이 소박하게 들어 앉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대웅전 뒷편의 대나무 숲 뒤엔 소나무 숲이 제각각 다른 느낌의 푸름을 뽐내고 있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도량답게 절은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돌담을 따라 대웅전 뒤편으로 올라가면 마치 비밀의 정원같은 곳을 만나게 된다. 824년(신라 헌덕왕 16)에 석남사를 개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도의국사의 사리탑이 이곳에 모셔져 있다. 이 석남사 부도는 보물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집들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이곳에 서서 많은 당우들이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석남사에는 도의국사가 821년에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기록대로라면 천이백년이 넘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보존이 잘 된 탓인지 석남사 경내에 남아 있는 두 기의 탑에서 천년 세월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지붕 위에 올라 앉은 저 새는 무엇을 바라보는 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지 미동 조차 없다. 때마침 피어난 수련으로 절 풍경이 화사한 빛으로 가득 찼다. 자연이 빚어낸 색은 어찌도 저리 고울 수 있을까.







나즈막한 담장을 끼고 배롱나무 한그루가 홀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달쯤 뒤면 저 풍성한 가지 마다 선홍색 붉은 꽃들이 피어날 장관이 그려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고 하지만 배롱나무꽃은 백일 이상을 핀다 해서 이 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쉬 변하고 덧없는 것 투성이인데 그 속에서 제 갈 길을 가고, 제 마음을 고이 지키는 것이 그래서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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