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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442

깨달음과 치유의 천년 숲길 - 오대산 선재길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계절, 가을 느낌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떠난 곳이 오대산이었다. 가을이면 웬만한 산들은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 마련이다. 단풍하면 딱 떠오르는 곳이 내장산이나 설악산, 주왕산 정도였는데 오대산 단풍이 이토록 화려하고 예쁜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오대산 선재길의 아름다움은 단연 으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그림이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뭉게구름은 떠다니고 맑디맑은 계곡물은 마음속까지 시원스레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점점 색을 더해가는 계곡 옆의 단풍 길은 보는 이의 마음에 큰 감동을 안겨 준다. 길을 걷는 이들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오게 할만큼 매력적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란 말이 바로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월정.. 2023. 1. 11.
너와 함께 이 바다를 걷고 싶어 - 협재해변 저만치 비양도가 보인다. 협재해변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게 느껴진다. 한달음에 헤엄쳐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맑고 투명한 바다는 햇빛이 바닥에 비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에머랄드빛이란 말은 너무 식상하지만 달리 표현할 재간이 없다. 휴가철이 끝나 인적이 드문 협재해변. 이곳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제주도의 풍경이다. 파도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부드러운 모래가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사람들은 풍경 속 점처럼 박혔다 이내 사라진다. 딱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서쪽 하늘로 석양이 질라치면 카페 의자에 몸을 깊숙이 뉘이고 잠깐의 절경을 만끽하면 그만이다. 언젠가 저 푸른 바다를 함께 걷고 싶다. 이왕이면 달빛이 잔잔히 내려앉는 밤바다가 제격일 듯 싶다. 오직 파.. 2023. 1. 10.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에 영원히 머물다 - 두모악 갤러리 제주라는 섬을 사랑해 20년 가까이 오로지 제주도의 중산간 들녘을 사진에 담는 작업에만 전념했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남달리의 폐교를 임대해 2년 여 간의 작업 끝에 국제적 수준의 아트 갤러리를 꾸며낸 사람. 이것이 사진작가 김영갑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말이다. 그렇다. 이제 김영갑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병든 육신은 지난 2005년 5월 29일, 끈질긴 투병 생활에 접어든 지 6년 만에 기나긴 안식에 들어갔다. 그가 손수 만들었던 두모악 갤러리에 그의 뼈가 뿌려져 그의 육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그가 사랑했던 ‘그 섬’ 제주에 영원히 살아 있다. 이제 두모악 갤러리는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굳이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2023. 1. 9.
지리산을 마당에 앉힌 집 - 산천재 따뜻한 봄바람 불어오는 3월의 어느 날에 무작정 산청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산천재 때문이었다. 지리산 자락 아래 산청 고을에 자리 잡고 있는 남명 조식의 옛집 산천재 역시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 덕분에 다녀온 여정 가운데 한 곳이다. 책 표지에 담긴 산천재의 모습은 따사로웠다. 몇 채 되지 않는 건물과 너른 마당을 주인처럼 자리 잡고 있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주는 충만함은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산천재를 향한 짝사랑은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때마침 5백 년도 훨씬 넘은 유명한 남명매(南冥梅)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려 멀리서 찾아온 빈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실제 본 산천재는 전체적으로 좀 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 사진 속의 모습과 달리 고운 단청으로 .. 2023. 1. 8.
깊은 산 속의 깊은 절 - 선암사 ‘깊은 산 속의 깊은 절’이란 표현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따 온 것이다. 그는 선암사를 소개하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나라 산사의 미학적(美學的) 특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 깊다는 표현은 산이나 절에 어울리지는 않다고 해야겠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또한 이 말처럼 우리 땅이 지닌 풍광(風光)의 특징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어휘도 없다고 생각된다. 선암사는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조계산 동쪽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3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고찰로 전해지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절이지만 사찰 운영을 놓고 조계종과 태고종 종단 사이에 해묵은 갈등을 빚어 볼썽사나운 모습이 세간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가에 들어서도 속세의 이해타산(利害.. 2023. 1. 6.
높고 외로운 구름이 고운 절 - 고운사 고운사는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에 위치한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이다. 이 절이 위치한 자리가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연화반개형상(蓮花半開形狀)이라고 하는데, 연꽃이 반쯤 핀 모양이란 뜻이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고운사를 찾았을 때 무언가 아늑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을 받았으니 헛된 말은 아닌 것 같다.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사가 신라 신문왕 원년인 681년에 창건해 처음에는 고운사(高雲寺)로 불렸다. 이후 신라 말기 유(儒), 불(佛), 선(仙)에 통달해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이 절에 들어와 가운루와 우화루를 창건하고 머물게 되었는데 그의 호를 따 지금처럼 고운사(孤雲寺)로 불리게 되었다. 한자 이름으로는 높은 구름이 외로운 구름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만 내겐 그저 고운 절로만 느껴진.. 2022. 12. 26.
호숫가에 세워진 아름답고 오래된 고택 - 지례예술촌 왜 이제서야 이곳에 왔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이다. 임하호를 따라 굽이굽이 좁은 산길을 돌고 돌아 지례예술촌 앞마당에 당도했다. 이정표를 따라오긴 왔지만, 이 깊은 산중에 있는 게 맞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깊숙이 숨어 있었다. 사방에 꽃이 피어나 따뜻한 봄날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지례예술촌의 첫인상은 따뜻함과 여유로움이라 얘기할 수 있겠다. 호숫가에 자리 잡은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잠시 생각해 봤다. 이곳에는 모두 열네 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 고택체험(故宅體驗)을 제공하고 있다. 군데군데 공사가 한창이라 조금 어수선하긴 했지만 아직은 손님이 찾지 않는 토요일 낮이라 이따금씩 중장비 소음만이 고택의 고요함을 깨운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 2022. 12. 17.
오래된 고택에서의 꿈같은 하룻밤 - 하회마을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무더운 날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하회마을에 가 볼 생각을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예전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찾는 이들이 확연히 늘었다. 매표소부터 하회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고, 낙동강을 따라 난 숲길을 따라 탐방로도 마련되어 있다. 날이 조금 선선해지면 낙동강의 풍광을 즐기며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길을 걷다보면 시끄러운 인간 세상과는 상관없는 듯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 너머 부용대가 저만치에서 우릴 반겨준다. 하회마을과 낙동강을 마주하고 서 있는 절벽이 부용대다. 강가에서 바라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올라보면 아찔한 낭떠러지다.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는 부용대에서는 하회마을과 낙동강의 물굽이를 한눈에 .. 2022. 12. 17.
산사에서 되새기는 넓고 깊은 응시의 충만함 - 봉정사 일상의 번잡함을 지워 보려 절을 자주 찾곤 한다. 그저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있노라면 산사의 적요(寂寥)를 깨우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진중한 독경소리, 목탁소리 뿐이다. 혼탁한 속세의 소리가 사위어지는 것 같아 참 좋다. 잠시나마 일상의 상념들에서 벗어나 내 안의 소리에 고요히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봉정사는 내가 사랑하는 절집으로 손꼽을 만 한 곳이다. 봉정사는 경북 안동시 서후면의 천등산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여러 기록에 따라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능인대사가 젊은 시절 대망산(천등산의 옛 이름) 바위굴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바위굴에 등불을 내려 환하게 밝혀주었다 한다. 그때부.. 2022. 12. 14.
새도 쉬었다 넘어가는 험한 고개 - 문경새재 문경새재의 이름을 두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다. 새재를 뜻 그대로 한자로 풀이하면 조령(鳥嶺)이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어가는 고갯마루니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 만큼 험한 고개라는 얘기일 것이다. 혹은 새로 만들어진 재라 해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의 사이에 있어 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나, 하나의 별칭일 뿐 타당하진 않을 것 같다. 문경새재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에 있다. 이 재는 예로부터 영남과 수도권을 잇는 군사, 행정, 문화, 경제적 요충지(要衝地)였다. 조선시대 한양에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영남유생이 필히 거쳐 가야 할 영남대로의 관문(關門)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신립 장군이 군사상 요충지인 문경새재 대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도 왜군에게 처참한 패배.. 2022. 3. 1.
숨겨진 보석 같은 전나무숲길의 아름다움 - 김룡사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여러 차례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인지라 인파로 넘쳐났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는 잘 생긴 전나무들이며, 숲이 선사하는 상쾌한 공기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떠올릴 때면 새벽의 고즈넉함을 그려왔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월정사 전나무숲은 숲이라기 보단 잘 정비된 산책로에 가까웠다. 거기도 처음에는 아는 사람만이 찾는 보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달라진 운명을 맞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김룡사 숲길을 홀로 걸으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떠올렸다. 물론 이 길이 월정사나 내소사 전나무숲길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다. 그만큼 잘 정비되지는 않았지만 절의 초입에서.. 2022. 3. 1.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체취를 따라서 - 백담사 아마도 백담사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백담사는 여러 이유로 유명한 곳인데, 최근에는(최근이라고 해봐야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이 칩거(蟄居)했던 곳으로 세상의 이목을 한몸에 받기도 했었다. 원래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조선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한 곳으로 많이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백담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내설악(內雪嶽)의 깊은 오지(奧地)에 이유로 백담사를 직접 찾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영상으로 접했던 백담사 모습은 전형적인 산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특히 한겨울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찾아가는 길도 무척 험하고 가파른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있는 줄로만 알았었다. 예전에는 절에 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 2022.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