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를 다녀 온 지도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났다. 송광사 하면 흔히들 순천 조계산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전북 완주의 종남산 산자락 아래에도 이에 못지 않는 훌륭한 사찰이 있으니 그 이름 또한 순천의 그것과 한자까지 똑같은 송광사(松廣寺)다. 아마도 송광이란 이름이 좋아 이렇듯 여러 절에서 이름으로 쓰고 있는 듯 하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완주 송광사의 원래 이름은 백련사였으며 신라 경문왕 때 도의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 이 절의 규모는 무척 커서 일주문이 사찰 경내로부터 3km 밖에 세워졌을 정도였으며 무려 800동의 당우와 600여명의 승려가 수행을 했다고 하니 능히 그 위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송광사는 아담하니 위압스럽지 않아 좋다. 처음 송광사를 찾았을 때 절 바로 옆에 있는 연밭에는 연꽃이 한창이었다. 희고 붉은 형형색색의 연꽃들이 짙은 녹음으로 가득한 절 풍경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자신은 더러운 진흙에 머물러 있되,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밝혀주는 연꽃의 뜻을 우리는 얼마나 좇을 수 있을까.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종루를 만나게 된다. 2층 누각 형태의 종루는 그 건축학적 아름다움으로 나를 이끌었지만 마침 전날 있었던 팜스테이 행사로 인해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던 궃은 날씨와 함께 산사의 고요함을 오롯이 즐길 수 없었던 무수한 사람들의 흔적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다음에는 좀더 느리고 깊은 흐름으로 절 구석구석을 걸어보고 싶다. 달빛 어스름한 봄날 저녁이면 더욱 좋겠다. 때맞춰 깊고 무거운 종소리가 마음을 울리면 그 자리에서 한 그루 나무처럼 뿌리내린다 한들 두려운 게 있을까 싶다. 비록 다시 속세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뿐이지만 보잘 것 없는 욕심과 고집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절이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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