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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저절로 읊어질 것 같은 예천 초간정

by 푸른가람 201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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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 이런 멋진 정자가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마치 알고 찾아간 것처럼 도로 옆 개울 가에 세워져 있는 건물을 발견하곤 무작정 차를 세웠다. 원래는 예천 용문사란 곳을 가던 길이었다. 어떻게 그 작은 정자가 빠르게 달리던 차에서 눈에 띄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 만나게 될 인연(?)이었으니 그리 된 것이겠지.



작은 개울가의 가파른 암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초간정의 모습은 독특했다. 그래서 이목을 사로잡았나 보다. 아래로 좀더 내려가 초간정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개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없었다. 주변도 그다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은 아니라서 아쉬웠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잘 가꾸면 괜찮은 명소가 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은 그저 멀리서 한번 보고 사진 몇장 찍으면 됐다 싶어 발걸음을 돌리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초간정은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 초간정 앞에 다다랐지만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아쉽지만 문이 잠겨있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싶어 발걸음을 되돌리려는데 초간정 옆의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말을 해보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뭔가에 이끌리듯 집 안으로 들어가 아주머니를 찾았다. 무슨 일이냐길래 초간정 안엘 들어가 볼 수 있는지 여쭤봤다. 아주머니는 대답을 않은채 열쇠를 가지고 나와 문을 열어주신다. 좀 귀찮기도 하셨겠지만 경상도 식의 친절을 베풀어주신 셈이다.



덕분에 초간정 구석구석을 잘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다. 누각에 잠시 앉아 있으니 바로 옆을 흐르는 개울의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양반이라도 된 양 시라도 한수 읊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우리 조상들은 어찌 이리도 경치 좋은 곳마다 이런 정자들을 세웠는지 신기한 일이다.



이 초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초간 권문해가 선조 15년때인 1582년에 지었으나 임진왜란때 불타버렸고 이후 광해군때 다시 중건했지만 이마저도 병자호란때 소실되어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7년때인 1870년에 그의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이마저도 140년이 지난 세월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각집 형태인데 정면 3칸 중 앞면의 좌측 2칸에는 온돌을 배치하였고, 나머지 칸에는 마루를 설치했는데 이 마루에서 앞의 개울을 볼 수 있게 배치해 놓았다. 실제로 이 곳 온돌방에 불을 지펴 하룻밤 잠을 청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이 정자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고 있었을지, 아니면 온돌에 불을 지피고 있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운좋게 예천의 숨겨진 보물 초간정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긴 내가 몰랐던 것일뿐 꽤 많이 알려진 곳이었던 모양이다. 초간정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었으며 이곳에서 용문사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그 유명한 예천의 명당 금당실마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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