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 중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삼척 죽서루였다. 이로서 휴전선 이북에 있어 찾아갈 수 없는 고성 삼일포와 통천의 총석정을 제외한 관동 6경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셈이다. 죽서루는 다른 관동팔경의 이름난 누각들이 모두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는 것에 비해 하천(삼척 오십천)를 바라보는 위치에 세워져 있고, 유일하게 보물(제213호, 1963년 1월 21일 지정)으로 지정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위치도 시내 중심가 쪽에 자리잡고 있어 시원한 바닷가 풍경이 내려다 보이던 여타 누각들에 비하면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마치 시민들의 휴식을 위한 잘 정돈된 공원 느낌이라고 할까? 누각이 서 있는 뒷편으로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자리잡고 있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해 울진에서 근무할 때 비교적 가까운 삼척 죽서루를 찾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시내 한복판에 있다 하여 일부러 찾지 않았었다. 관동팔경이라면 당연히 바닷가에 세워져 있어야 마땅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거침없이 펼쳐진 동해의 푸른바다를 보며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시원함은 느낄 수 없었지만 죽서루 바로 앞을 유유히 흘러가는 오십천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는 기분도 제법 괜찮았다.
죽서루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 원종 7년인 1266년에 이승휴가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조선 태종 3년(1403년)에 대규모 중창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현재의 건물은 조선시대 초기 건축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후 수차례의 수리를 통해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워 지었으며 관동팔경의 정자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죽서루라는 이름은 누각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 안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어서 그리 불려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삼척부사를 지냈던 이들이 직접 쓴 죽서루, 관동제일루, 해선유희지소라는 현판들이 누각 곳곳에 붙어 있다.
몰랐던 사실인데 이 죽서루에서 영화 '외출'이 촬영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죽서루 안에는 주연배우였던 배용준과 손예진의 핸드프린트가 만들어져 있고, 영화 촬영지임을 알 수 있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 아마도 겨울을 배경으로 촬영이 된 것 같은데 '외출'이라는 영화를 보았으면서도 이 죽서루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신기하다.
과거에 입장료를 받았었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입구에 매표소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있다. 따로 신청만 하면 문화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렀던 죽서루지만 한바퀴 돌아보니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조들이 굳이 삼척의 바닷가가 아닌 오십천 냇가 위에 죽서루를 지었던 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로서 관동팔경 기행을 다 마쳤다. 마치 개학을 며칠 앞두고 방학숙제를 다 마친 듯 개운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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