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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등명락가사에서 대한민국 정동(正東)의 푸른바다를 만나다

by 푸른가람 201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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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을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강릉시 관광안내도에서 생소한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해안도로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등명락가사. 보통의 사찰 이름이 세자인데 비해 여긴 무슨 연유에선지 다섯자다. 알고보니 등명은 낙가사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이 수다사를 창건했고, 이후 고려시대때 중창되며 등명사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등명이란 이름은 절의 위치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는 등불과 같다 하여 붙여졌고, 또한 이 절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삼경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과거에 빨리 급제한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옛날 얘기지만 이런 설화들이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 것 같다. '스토리 텔링'이 중시되는 시대니 이런 것들도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싶다.






고려시대 때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폐사되었다. 폐사된 이유로는 세가지를 들고 있는데, 첫째는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불질렀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안질로 고생하던 왕이 점술가의 말을 믿고 폐사시켰다는 것이다. 큰 절에서 쌀뜬물이 동해로 흘러 들어 동해 용왕이 노해서 왕이 안질이 났다 하여 신하를 시켜 확인해 보니 정말로 이 절에서 쌀 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들기에 이 절을 폐사시켰다는 얘기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긴 하지만 수백년 전 과거라면 또 가능했던 일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절이 문닫게 된 세번째 이유가 개인적으로는 그럴 듯 하게 들린다. 등명락가사가 서울의 정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궁에서 받아야 할 일출을 먼저 받게 되므로 정동쪽 등불을 끄게 되면 자연스레 조선의 불교가 쇠할 것이라고 해서 이 절을 폐사시켰다는 이야기다. 일주문 앞에 대한민국 정동향 표지판이 있는 걸 보면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절의 역사는 천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전각들은 모두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라 고찰의 고풍스러운 맛은 느낄 수가 없다. 폐사 상태의 절을 1956년 경덕스님이 중창한 뒤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낙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영산전, 극락보전, 범종각 등의 전각들이 지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자장이 창건 당시 만들었다는 오층석탑만이 등명락가사의 영욕의 세월을 함께 지켜봤을 것이다.




역시 등명락가사의 매력은 푸른 동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입구의 넓은 주차장에서부터 법당에 이르기까지 발길 머무는 그 어디에서든 눈으로, 감촉으로, 또 냄새로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등명감로약수다. 위장병과 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하니 한모금 입을 축여도 좋을 것이다. 너무 많이 마시면 치매를 유발할 수도 있다니 과욕은 금물이다.







등명락가사를 찾았을 때는 스님의 설법이 한창이었다. 굳이 법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스피커를 통해 경내 구석구석 스님의 말씀이 퍼졌다. 동영상으로 찍어 보관하고 싶은 좋은 말씀이었지만 마음 속에 담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내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지겠지만 늘 그때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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