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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화마의 상처를 딛고 푸르름을 되찾은 양양 낙산사

by 푸른가람 201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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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봐서는 엄청난 화재를 겪었던 곳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1학년때 수학여행 코스로 낙산사와 의상대를 찾았던 기억은 나지만 그때 기억이라곤 엄청나게 큰 불상과 바닷가 암벽 위에 있던 암자. 그리고 푸른 동해 바다 정도가 기억의 전부다. 다시 이십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낙산사는 2005년 4월 6일 일어난 산불로 사찰의 모든 것을 잃었었지만, 또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라던 고성, 양양지역의 산불은 천년 고찰 낙산사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아갔다. TV 뉴스 화면을 채우던 시뻘건 불덩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거센 바람을 타고 수십여미터를 날아가는 무시무시한 위력 앞에 사람들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원통보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각들과 보물 제 479호 낙산사 동종도 그때 소실되었다. 쇳덩어리를 녹여 없앨 정도의 화마였지만 보물 제 499호인 낙산사 칠층석탑은 온전히 남아 있다. 역시 쇠보다 강한 것이 돌인가 보다. 수많은 전란과 화재 등에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탑의 모습이 경이롭다. 낙산사 동종도 산불이 난 이듬해 복원이 되어 범종루에 모셔져 있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대사가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3대 명산으로 불리는 오봉산에 터를 잡은 이후 1,300여년의 세월을 속세의 중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낙산사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 설법을 펼치며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연유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타전이라는 전각이 해수관음상 아래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동해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지어져 풍광이 아주 뛰어나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동양 최대라는 해수관음상은 여전히 자애로운 모습으로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해수관음상 바로 아래 바닷가 위태로운 절벽 위에는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되었다는 홍련암이 자리잡고 있다. 이 홍련암은 2005년 산불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평일인데도 낙산사를 찾는 사람들로 주차장은 만원이다. 낙산사 입구의 낙산유스호스텔은 몇해전 낙산사에서 인수했다고 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하지만 뭔가 큰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워낙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절인데다 절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기에 사시사철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낙산사. 모든 것을 태워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싹을 틔우는 자연도 위대하다지만,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는 인간들의 의지도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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