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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삼성 vs SK 12차전 리뷰 - 만만했지만, 결코 무너지지는 않았다

by 푸른가람 2009.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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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경기가 끝난지 이틀이 지난 경기인데도 느지막한 리뷰를 올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년에 한번 갈까말까한 인천 문학구장 직관을 다녀왔거든요. 인천에 교육때문에 1주일간 머물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삼성과 SK의 3연전이 잡혀 있더군요. 물론 삼성 경기가 아니라해도 구경삼아 한번 다녀올 요량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학구장 방문은 이번이 세번째였네요. 사직이나 잠실도 여러번 다녀봤지만, 역시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곳은 문학인 것 같습니다. 물론 국내 야구장 가운데 가장 최근에 건립된 구장이니 깔끔하기도 하고, SK 구단에서 팬들의 욕구에 발맞추려는 여러 시도를 하는 모습들도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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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삼성과 SK간의 시즌 12차전 경기 결과는 아시다시피 삼성이 5:3으로 승리를 거둔채 끝났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좀 흘러 현장에서 느꼈던 놀라움이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사실 충격적인 게임이었습니다. 야구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전광판을 보는 순간 "아~ 오늘 잘못 왔구나"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리 선발투수 정도는 확인했어야 하는 후회였지요.

삼성 선발 이우선과 SK 선발 송은범. 송은범이 누굽니까. 시즌 8승(무패)으로 팀동료 김광현과 함께 다승부문 공동1위에 올라있는데다,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는 3게임에 등판해 단 한번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3승, 평균자책점 0점을 기록하고 있는 삼성 천적 투수입니다.

이우선은 삼성팬으로 삼십년 가까이 살아온 저게도 무척이나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며칠전에 KBO 에 신고선수로 등록이 된 선수라는 정보만 있었지요. 함께 야구장을 찾았던 동료들도 낭패스런 얼굴이더군요. 모처럼 야구응원왔는데 질 확률이 90%인 셈이었으니까요. 야구는 투수놀음이라잖습니까.

상대는 에이스를 내세워 필승의지를 불태우고 있는데, 우리팀은 신고선수로 단 한번의 1군 경험이 없는 선수를 선발로 내세웠다면 그 결과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법이지요. 물론 이우선 선수가 2군에서 7승1패로 다승 1위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군 기록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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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경기결과에는 초연해지자고 결심하며 맥주와 치킨으로 요기를 하며 여유롭게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그런데 1회초부터 경기는 전혀 예상밖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회초 수비에서 1,2번 타자를 손쉽게 범타로 잡아낸 송은범이 강봉규에게 깨끗한 중전안타를 허용한 후 급작스럽게 제구력 난조에 빠졌습니다.

양준혁과 박한이를 연속볼넷으로 출루시켜 2사 만루위기를 자초한 송은범은 다음타자 채태인과의 풀카운트 승부끝에 삼진을 잡아내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긴 했지만 이날 경기에서 5.1이닝동안 7안타 6사사구을 허용하며 무려 3점을 헌납했습니다. 올시즌 계속되던 삼성전 무실점 행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자, 김광현을 제치고 지존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삼성 선발 이우선의 1회말은 예상대로 불안했습니다. 정근우와 박재상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해 무사 2,3루의 위기를 맞더니 다음 타자 김재현을 맞춰 그로기 상태 일보 직전까지 몰립니다. 다음 타자는 SK 4번타자 이호준. 큰 것 한방이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SK가 잡은 것입니다. 더군다나 삼성 선동열감독은 이날 경기에 큰 욕심을 내지도 않아 보였으니 이우선이 1회에 무너진다면 SK는 손쉽게 1승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호준은 SK팬들이 기대치 않았던 병살타를 날리며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3루주자 정근우가 홈을 밟으며 1점을 선취하긴 했지만, 1점으론 사실 성에 차지 않았지요. 2회말 공격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아낸 이우선은 이후 3회말 이호준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며 1점, 4회말에는 박정권에게 우월 솔로홈런을 허용하며 비록 5회를 마치기도 전에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지만 기대 이상의 호투로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4.1이닝 4안타 2사사구 3실점(2자책)은 지표상으로 훌륭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최강전력의 SK를 상대로 시즌 첫 1군 등판의 부담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은 앞으로 이우선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빠른공의 구속이라고 해봐야 140km/h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볼끝의 움직임이 보기보단 괜찮아 보였습니다. 삼성은 이후 박성훈 - 최원제 - 권혁 - 정현욱을 이어던지며 기어코 9회초 승부를 뒤집었고 9회말에는 오승환(15세이브)을 내세워 길었던 승부를 마무리했습니다.

SK는 초반 리드를 불펜진이 지키지 못해 또한번 역전패의 쓴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올시즌 SK의 불펜진은 확실히 지난 2연패 기간동안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약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벌떼야구는 여전하지만 상대를 완벽히 제압할만큼 위력적이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네요.

삼성은 SK보다 많은 안타와 볼넷을 얻어내면서도 경기 중반까지 SK에 밀렸습니다. 5회초 추격에 불씨를 당기는 양준혁의 홈런과 6회초 동점적시타가 없었다면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신명철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사이 노장 양준혁의 분전이 눈부십니다. 삼성 타자들이 막판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덕분에 삼성은 기어코 9회초 극적인 역전을 이뤄냈습니다.

SK 이승호가 선두타자 강봉규를 막지 못한 것이 결국 패전의 빌미가 됐습니다. 좌완 이승호는 양준혁을 범타로 잡고 한숨 돌렸지만 계속되는 좌타자와의 승부에서 연달아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박한이에게는 좌중간 2루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내줬고, 채태인에게 중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야와 했습니다. SK가 올시즌 3연패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허약해진 불펜진을 재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여지네요. 마무리 정대현마저 그다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조웅천의 가세가 SK로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모처럼만의 문학구장 관전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경기 승패에 관계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으니까요. 언제쯤이면 대구에도 문학 정도의 야구장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가슴 한켠에 답답함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동네야구 수준의 야구장에서 메이저리그 수준의 야구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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