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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지리산을 마당에 앉힌 집 산천재

by 푸른가람 201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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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바람 불어오는 3월의 어느날에 무작정 산청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다 산천재 때문이었다. 지난해 읽었던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 덕분에 다녀온 곳이 여럿 되는데 지리산 자락 아래 산청 고을에 자리잡고 있는 남명 조식의 옛집 산천재 역시 그 여정의 한 곳이다.




책 표지에 담긴 산천재의 모습은 따사로웠다. 몇채 되지 않는 건물과 너른 마당을 주인처럼 자리잡고 있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주는 충만함은 묘한 끌림이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산천재를 향한 짝사랑은 몇달이 지나서야 겨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때마침 5백년도 훨씬 넘은 유명한 남명매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려 멀리서 찾아온 빈객을 맞아주고 있었다.



실제 눈으로 본 산천재는 전체적으로 좀더 휑한 느낌이 들었다. 흑백 사진 속의 산천재와 달리 고운 단청으로 칠을 해놓은 산천재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솔직히 불편했다. 함성호 시인이 산천재를 찾은 이후 이곳에도 관리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느껴진다. 관리의 필요성은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관심은 고유의 매력을 훼손할 수도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탐매라는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매화꽃이 필 때가 되면 매화 향기를 좇아 떠나는 유람이 바로 그것인데 내겐 그런 고매한 풍류를 즐길만한 자격은 없는 듯 하니 그저 수백년 세월을 피고 진 끈질긴 생명력과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을 배경삼아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성 싶다.





산천재 자체는 아주 작은 집이다. 하지만 바로 옆을 흐르는 덕천강과 산천재에 앉으면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지리산 천왕봉까지 산천재의 공간 속으로 품어 안고 있어 넉넉한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옛날 남명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산천재 마루에 한참을 앉아 쉼없이 흐르는 덕천강 물줄기와 천왕봉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뭔가 모를 뭉클함이 몰려 왔다. 





산천재 마루 벽에는 중국 요임금이 권하는 임금 자리마저 마다하고 오히려 자기의 귀가 더러워졌다 하여 영수에 가서 귀를 씻고 기산에 들어가 지냈다는 중국의 대표적 은사 허유의 고사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평생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만 전념하는 처사의 삶을 살았던 남명의 고매한 삶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건축가 함성호는 산천재의 풍수를 두고 '지리산을 마당에 앉힌 집'이라 표현했다. 정말이지 산천재가 지닌 특징을 한마디로 잘 정리한 탁월한 어휘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보는 산천재는 빛바래고 퇴색한 모습 그대로인데 지금의 산천재는 억지로 늙은 얼굴에 화장을 한 것처럼 어색하다. 늙고 퇴락해가는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 칼과 방울을 차고 처사의 모습을 지키려 했던 남명의 뜻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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