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비암사에 아니오신듯 다녀가소서

by 푸른가람 2012. 3. 10.
728x90


비암사는 크지도 않고,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찰도 아니다. 그래서 지난해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녔을 때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행선지에서 뺐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이었는 지는 지난해 봄에 찾았던 개심사, 그리고 마침내 지난 겨울에 찾았던 비암사를 직접 다녀오고서 깊게 깨우치게 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절이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비암사는 규모가 작다. 극락보전, 대웅전, 명부전, 산신각 등 당우들이 단촐하니 사각형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구석구석 어디를 다녀봐도 깔금하게 잘 정돈된 모습에서 보살님들의 부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드는 절이라서 참 좋다. 비암사를 찾았던 그날의 날씨도 그러했다. 2월 중순이었지만 그날은 마치 시간이 한달이나 앞으로 흘러간 듯 따뜻한 봄날 그 자체였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울려지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한가로이 경내를 걸어다니며 느꼈었던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다시 비암사를 찾을 그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며칠 전에 읽었던 '바람이 지은 집 절'이란 책에도 이 작은 절, 비암사가 소개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마치 세상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진가를 알릴 수 없어 아쉬웠던 친구가 일간지에 소개된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 책의 지은이 윤제학님이 비암사에서 느꼈던 그 마음을 고스란히 나도 공감할 수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책에서 저자는 비암사의 느티나무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비암사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절의 당우도 아니었고, 석탑도 아니었다. 바로 입구에 서 있는 수령 8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바로 이 절의 주인처럼 느껴졌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암사 느티나무는 일주문이고, 천왕상이고, 살아있는 절의 역사인 것이다.




자연에서 신성을 보고 경이를 느낄 때, 그 마음자리가 극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역시도 동의한다. 우리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부처의 세상일 테니까. 누군가가 비암사 느티나무에서 아미타 부처의 현신을 보았다면 나는 언젠가 비암사를 함께 걷고 있을 행복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날 그 시간의 비암사가 바로 나의 극락일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좋다. 자연에 대한 솔직한 감각을 표현하라. 금강산에 어떤 문헌이 있든지 말든지, 백두산에서 어떠한 인간의 때묻은 내력이 있든지 말든지, 조금도 그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 없이 산이면 산대로, 물이면 물대로 보고 느끼고 노래하는 시인은 없는가? 경승지에 가려면 문헌부터 뒤지는 극히 독자(獨自)의 감각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 이태준의 무서록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