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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지리산 계곡 내원사에서 찰라무상의 나를 내려 놓다

by 푸른가람 201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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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것은 아니다. 내원사란 절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양산에 있는 천성산 내원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산청 내원사에 대한 글들은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절이고,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절도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기어코 이 작은 절을 찾아 가보려 했던 것인 지도 모르겠다.




큰 도로를 빠져 나와 좁다란 산길을 따라 내원사로 가는 데 바로 옆의 계곡이 온통 흙탕물이다. 지금은 큰물이 질 시기도 아닌데 맑은 물이 흘러야 할 계곡이 이 모양일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절로 향하는데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공사가 한창이다. 펜션을 새로 짓기도 하고 야영장을 손보기도 하고 본격적인 행락철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손길들이 분주하다.



어지러운 공사의 현장은 내원사에도 있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시끄러운 중장비 소리가 산사의 고요한 적막이 무색할 정도다. 연신 흙을 퍼내고 돌을 깨뜨린다. 계곡을 혼탁하게 만들었던 탁류의 시원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절에 들어갈 기분이 나지 않았다. 양 갈래로 갈라져 내려오다 마침내 절 앞에서 하나의 물줄기로 만나는 계곡 입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바로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계곡 물이 많이 불었다. 쉼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세찼다. 주저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곡 사이에 난 다리를 건너 내원사 경내로 들어섰다. 생각했던 것처럼 작고 소박한 절이다. 한눈에 경내의 모습이 들어오고 당우를 하나 둘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굳이 절이 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절이 크고 수많은 당우가 있고, 신도수가 많다고 해서 그 사찰의 불심이 깊고 정진이 쉬운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작고 소박한 절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됐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글들은 나그네의 발길을 한동안 멈추게 만든다.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으며
현재의 나는 찰라무상이니 없다.

이렇게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일물(一物)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하는
보살행의 도구요, 밑거름일 뿐이다.



 


 


 


 


 


신라 말기 무염이 창건한 절로 전해지고 있는 이 내원사에는 두 개의 보물이 있다. 그 하나는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1950년대 도굴꾼에 의해서 옥개석이 부서지고 상륜부가 사라지는 일을 겪었지만 이후 복원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서 있다. 조각 양식을 볼 때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보물 제1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다른 하나는 비로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이다. 원래 이 석불은 내원사에서 30리 정도 떨어져 있는 폐사지에 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인데 지권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이다. 발견 당시의 명문에 따르면 신라 혜공왕 2년인 776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그 유구한 세월을 감히 헤아리기도 어렵다. 깎이고 닳은 돌부처님께 절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오래된 부처님과 시원스런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에 불편했던 첫인상도 깨끗이 씻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제아무리 혼탁한 탁수도 흐르고 흘러 물이 섞이고 섞이면 본래의 맑음을 되찾는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게 흘러가고 섞이면 또 본디 마음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서원을 안고 내원사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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