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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by 푸른가람 201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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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몇 km를 밟고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렀는데도 수덕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만 대충 챙겨들고 대웅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의 수덕여관부터 수덕사 경내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지만 이날은 그저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만나뵙는 것으로 만족할 요량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찍은 사진들은 도무지 별 감흥이 없다.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수덕사 대웅전의 단아함은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좋다. 날씨도 쌀쌀하고 시간대도 그래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모처럼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이 산사의 적막함을 일깨워줬다.






한참이나 먼 거리를 한바퀴 돌아 애시당초 행선지에 없었던 수덕사를 찾았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가을 그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수덕사 대웅전 부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내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했었다. 찬 기운에 연신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는 대웅전 마루에 무릎을 꿇고 자비로운 부처님 모습을 말없이 바라 보았다.





수덕사 대웅전은 참 매력적인 건물이다. 주위에서는 모두들 열심히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었지만 난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을 서서 대웅전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 진중한 느낌, 그 무엇이 분명 있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무게 속에 나의 보잘 것 없음을 또한번 깨닫게 되는 나는 경건해진다.





부처님도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찌 보면 근엄한 듯, 또 어떻게 보면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나를 내려다 보고만 계셨다.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짧고도 긴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아니라 난 그저 물었을 뿐이고 부처님은 그 물음에 아주 간단히, 그렇지만 아주 명확한 답을 하셨다. 그 대답을 듣고서 수덕사를 내려오는 길 난 나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었다.




해가 저무는 덕숭산의 공기는 뜨거운 내 가슴의 열기를 식혀주려는 듯 차가웠다.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답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닌데 왜 난 수백킬로미터를 달려 이 곳에 왔던 것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의 육신과 몸은 여전히 사바세계에 있고, 부처님의 땅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다시 번뇌에 시다릴 수 밖에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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