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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고택, 두계 은농재

by 푸른가람 2012.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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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행선지에 올려져 있던 곳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이었지만 가는 길에 들러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은농재였다. 은농재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이다.





정식 명칭은 사계고택이라 함이 옳겠다. 은농재는 사계고택의 별당으로 이 고택에는 은농재 말고도 대문채, 행랑채, 안채와 가묘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사계고택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고택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주위로 높은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그 아래 유서깊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사계고택이라는 힘있는 필체의 현판이 붙어 있는 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나타나는 건물이 바로 은농재다. 건물은 아담하면서도 사대부 집안의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는 듯 하다.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초가 형태였지만 지금은 기와를 올리고 있다고 하는데, 통상 기와집이 일반적인 양반 가옥이 초가라니 조금 의아스럽기는 하다.






사계고택을 한바퀴 돌아보면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고 단아한 느낌이 난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을 들자면 평면적인 배치가 인상적이다. 인근의 돈암서원에서도 느꼈지만 전체적으로 평지에 건물이 놓여있다 보니 경사지에 놓여져 몇개의 단을 두고 배치되어 있는 경상도 지역의 고택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하얀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고택을 여유롭게 걷는 느낌이 좋았다. 아직 2월 중순이었지만 날씨는 마치 3월 하순의 어느 봄날을 떠올리게 할만큼 따뜻하고 포근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으니 뽀드득 소리가 났다. 잠깐이나마 복잡한 속내는 잊어두고 어린 아이의 마음이 되어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그렇게 한참을 돌아 다녔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유달리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 곳이다. 고택의 제일 안쪽에 있는 장독대가 놓여 있다. 여기에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봄볕처럼 이 곳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남녀가 유별했던 그 옛날에는 아마도 이 공간에 발을 들여놓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이 지역에 유달리 많은 성리학적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조선 후기를 지배했던 노론의 영수가 이곳에 머물렀었고, 그의 스승 또한 이 곳에서 정치를 생각했을 것이다. 노회한 노론의 거두 송시열에 당당히 맞섰던 윤증의 기개도 이 땅에 잔잔히 남아 흐를 것이다. 그저 백제의 고토로만 여겼던 충청도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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